2022/10 20

가을산에서 - - 牛耳詩篇 · 8

가을 산에서 - 牛耳詩篇 · 8 洪 海 里 혼백을 하늘로 땅으로 돌려보낸 텅 빈 자궁 같은, 또는 생과 사의 경계 같은 가을 산에 서 있었네 지난 봄 까막딱따구리가 파 놓은 오동나무 속 깊이 절 한 채 모셔 놓고 가지에 풍경 하나 달아 놓았네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에게 안부를 남기고 물이 만들고 간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무장무장 먼 산에 이는 독약 같은 바람꽃 맑은 영혼의 나무들이 등불을 달고 여름내 쌓인 시름을 지우고 있었네 서리 내릴 때 서리 내리고 스러지는 파도가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지나간 세월이 내일의 꿈이 될 수 있을까 먼 길이 다가서는 산에 혼자 서 있었네. -시집『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

마로니에 詩공원축제 / 동양일보 2022. 10. 28.

시심으로 물든 마로니에 詩공원축제 성료 지역명사, 시인, 시낭송가 무대에 300여명 관객 호응 감동과 서정이 있는 특별한 시 문화행사 ‘마로니에詩공원축제’가 깊어가는 가을 오후 한때를 시심으로 물들였다. 동양일보는 28일 마로니에詩공원에서 22회 ‘충청북도 명사시낭송회’, ‘2022 충청북도 시낭송경연대회’, ‘아이러브포엠 청주전’을 함께 한 ‘마로니에 詩공원축제’를 개최했다. 이날 축제에는 지역 명사, 시인, 시낭송가,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대를 꾸몄다. 객석을 가득 메운 300여명의 관람객들은 시정 넘치는 가을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충청북도 명사시낭송회’는 김영환 충북도지사, 오세동 청주시 부시장, 김병국 청주시의회 의장, 진상화 충북개발공사 사장 등 16명..

산책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산책 · 2 / 洪 海 里 한발 한발 걸어가면 발로 읽는 책 가슴속에 비단길 펼치고 눈으로 듣는 책 마음속에 꽃길을 여니 줄 줄만 아는 산 책에 줄을 대고 한없이 풀어 주는 고요를 돌아보라 줄글도 좋고 귀글이면 또 어떤가 싸목싸목 내리는 안개, 그리고 는개 온몸이 촉촉이 젖어 천천히 걸어가면 산 책 속에 묻히리니, 입으로 듣고 귀로 말하라 인생은 짧고 산책은 길다.

톺고 톺아보고

톺고 톺아보고 洪 海 里 국밥도 몇 차례 토렴을 하고 나야 따뜻한 진국이 입 안에 돌 듯 헛물로 메케하던 시 휘영청 시원스런 세상으로 들려면 늙마의 괴나리봇짐만큼이라도 맛을 살려내야지 쓸데없는 짓거리 작작 하고 씻나락 같은 시어 잘 불려 놓았는데 "우리 밥 한번 먹자" "언제 술 한잔하자" 하는 소리 듣지 않도록 너는 네 혀로 말하고 나는 내 귀로 듣는 세상 사는 일 참 아프지 않도록 쓸쓸하지 않도록

살아야 하니

살아야 하니 洪 海 里 슬픔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 뒤를 따라 또 다른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을 이끌고 줄지어 달려왔다 슬픔이란 아픔이란 그런 것이었다 기쁨은 오다 말고 돌아서버렸다 즐거움도 역시 그랬다 기쁨이나 즐거움은 도두 쌓거나 낮추 놓지 않았다 '재차', '한 번 더', '되풀이하여'는 없었다 기쁨이 슬픔에게 즐거움이 아픔에게 따뜻이 밝혀주는 등불이라면 오감하겠네.

운화雲華

운화雲華 洪 海 里 지상에 첫서리가 내리고 푸나무마다 꽃과 열매를 내려 놓을 때 드디어, 차나무는 찬 하늘 바람을 모아 노란 꽃술, 하얀 꽃을 터뜨려 지난해 맺은 열매와 상봉을 하고 서리 하늘에 영롱한 등을 밝힌다 사람들은 따뜻한 한 모금의 물로 가슴속을 데워 마음을 씻노니 천지가 하나 되어 나를 깨우네. * 雲華는 차꽃을 시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