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꽃 한 송이 벌다 / 洪海里
처서가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반생을 비운 자리에 난초
꽃 한 송이 소리없이 날아와 가득히 피어납니다 많은
세월을 버리고 버린 물소리 고요 속에 소심素心 한 송
이 속살빛으로 속살대며 피어납니다 청산가리 한 덩이
가슴에 품고 밤새도록 달려간다 한들 우리가 꽃나라에
정말 닿을 수 있겠으랴만,
피어나는 꽃을 보고
그대는 꽃이 진다 하고
나는 꽃이 핀다 하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면서
목숨은 피어나는데 ……,
참 깊은 그대의 수심水深
하늘못이네.
우리가 본시부터
물이고 흙이고 바람이 아니었던가
또는 불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물빛과 하늘빛 속에는 불빛도 피어나 황토빛
내음까지 실렸습니다 올해에도 여지없이 처서가 돌아
와 산천초목들이 숨소리를 거르는데 늦꽃 소심 한 송
이 피어 깊이깊이 가슴에 들어와 안깁니다.
푸르르르르 백옥 같은 몸을 떨며 부비며 난초꽃 한 송
이 아프게 피었습니다.
-시집『愛蘭』(1998)
무위無爲의 시詩 / 洪海里
너는
늘
가득 차 있어
네 앞에 서면
나는
비어 있을 뿐 ㅡ
너는 언제나 무위의 시
무위의 춤
무위의 노래
나의 언어로 쌓을 수 없는 성
한밤이면
너는 수묵빛
사색의 이마가 별처럼 빛나, 나는
초록빛 희망이라고
초록빛 사랑이라고
초록빛 슬픔이라고 쓴다
새벽이 오면
상처 속에서도 사랑은 푸르리니
자연이여
칠흑 속에 박힌 그리움이여
화성華星의 처녀궁에서 오는
무위의 소식
푸른 파도로 파도를 밀면서 오네.
-시집『愛蘭』(1998)
*蘭 사진은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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