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詩는 없다』(미간) 256

9월이 왔다고 8월, 너를 버렸다

9월이 왔다고 8월, 너를 버렸다 洪 海 里 가을이 왔다고 여름, 너를 버리고 살아 있다고 추억, 너를 버렸다 친구가 있다고 적, 너를 버리고 기역자를 안다고 낫, 너를 버렸다 열매를 맺었다고 꽃, 너를 버리고 말을 했다고 침묵, 너를 버렸다 시를 썼다고 언어, 너를 버리고 마음 있다고 가슴, 너를 버릴까 알을 낳았다고 닭, 너를 버리고 치마끈 풀었다고 치마, 너를 버릴까 황혼이 왔다고 인생, 너를 버리고 겨울이 왔다고 가을, 너를 버릴까 아아, 나는 버릴 것도 하나 없는데 아아, 나는 버릴 것도 못 버렸구나! (2006.09.01.)

詩를 찾아서

詩를 찾아서 洪 海 里 해 다 저문 섣달 초닷새 썩은 속 다 타 재 되고 빈 자리 가득 안고 있는 詩人이여 네가 내 속을 아느냐고 슬픔을 다 버린다고 비워지더냐고 하늘이 묻는다 눈물 있어 하늘 더욱 눈부시고 추위로 나무들의 영혼이 맑아지나니 시인이여 그대의 시가 닿을 곳이 어디란 말인가 가라, 그곳으로 물 같은 말의 알이 얼어붙은, 빛나는 침묵의 숲에서 고요한 그곳으로 가라 시인이여 아직 뜨겁고 서늘하다 깊고 깊은 시의 늪은.

솔개그늘

솔개그늘 洪 海 里 솔개 한 마리 떴다 그늘이 얼마나 하랴 음력 이월 스무날 흐려야 풍년이 드니 솔개 그림자 하나라도 반가우련만 솔개는커녕 햇빛만 쨍쨍하구나! 어느 그늘 폭염은 지나갔지만 아직 가을 뙤약볕이 매서운 나날입니다. 중장비 운전석 위에 달린 작은 파라솔이 만드는 그늘은 몇 뼘이나 될까요.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서울 도봉구에서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동아일보 2019.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