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에 서서 71

가을 들녘에 서서 /경상일보

가을 들녘에 서서 홍해리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는 것이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 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 겨운 마음 자리도 스스로 빛나네. [ 詩를 읽는 아침 ] • 홍해리 • 경상일보 2014.11.13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반에 반도 못보고 반에 반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한 계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은 모든 걸 떨구고 난 뒤에야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둥글게 보이던 나무가 예리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갖가지 형색으로 눈길을 끌던 풀꽃들이 누렇게 마를 때야 동색의 집단이었던 것도 알게 됩니다. 버리고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은 순환을 하지만 사람은 평생을 채우려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가볍게 떠나야할 때가 왔는데도 놓지..

가을 들녘에 서서 / 기청(시인 · 문예비평가)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 간결하고 담백한 선풍의 시다. 이 시의 서두를 의미상으로 풀어보면 '눈먼 자에게는 모두 아름답게 보이고 귀먹은 자에게는 모두 황홀하게 들린다'가 된다. 마음의 눈, 마음의 귀는 잡다한 현실이 아닌 본성의 세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처럼 "마음 버리면"(현상의 탐욕을 내려놓으면) 텅 빈 마음이 되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충만한 행복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을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라고 하여 불교적인 깨달음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