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희 22

월간《우리詩》신작소시집 /2023. 1월호.

2023. 신년호 〈신작소시집〉 세란헌洗蘭軒 외 4편 洪 海 里 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난잎을 씻고 내 마음을 닦노니, 한 잎 한 잎 곧추서고 휘어져 내려 허공을 잡네. 바람이 오지 않아도 춤을 짓고, 푸른 독경으로 가득 차는 하루 또 하루 무등, 무등 좋은 날! * 세란헌 : 우이동에 사는 한 시인의 달팽이만 한 집. 푸른 하늘 무지개 늙바탕에 한무릎공부했다고 깔축없을 것이 어찌 없겠는가 세상 거충대충 살아도 파근하고 대근하기 마련 아닌가 나라진다 오련해진다고 징거매지 말거라 한평생 살다 보면 차탈피탈 톺아보게 되느니 더운 낮에 불 때고 추운 밤에 불 빼는 어리석은 짓거리 하지 마라 씨앗은 떨어져야 썩고 썩어야 사는 법 때 되면 싹 트고 열매 맺느니. 독거놀이 오늘도 혼자 앉아 물밥 한 병, 닭가..

물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洪 海 里 꿈속에서 꿈같은 시절 누렸다고 부디 수수꾸지 말아 다오 발이 없어도 못 가는 곳 없는 바람처럼 낮은 곳만 찾아 서슴없이 가는 물같이 오늘도 불어가고 내일도 흘러서 갈 척행隻行의 길! 너는 네 혀로 말하고 나는 내 귀로 듣는 네 말 다 지우고 내 말 다 사라진 곳으로 나 가리라 나가리라 무하유지향으로! * 퇴고 중인 초고임.

배꽃

배꽃 洪 海 里 봄에 오는 눈발은 밤에 더 밝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는 나비 떼 새들도 날아와 우짖으면 달빛에 노 젓는 소리 하얗게 일어서고 깊은 산 시름 속에 젖는 한밤을 옷깃에 차는 달빛 그림자 눈썹 끝에 어리는 天上의 엽서.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배꽃 洪 海 里 1 바람에 베어지는 달빛의 심장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불꽃이네 호르르 호르르 찰싹이는 은하의 물결. 2 천사들이 살풀이를 추고 있다 춤 끝나고 돌아서서 눈물질 때 폭탄처럼 떨어지는 꽃이파리 그 자리마다 그늘이 파여 …… 3 고요가 겨냥하는 만남을 위하여 배꽃과 배꽃 사이 천사의 눈짓이 이어지고 꽃잎들이 지상을 하얗게 포옹하고 있다 사형집행장의 눈물일지도 몰라. 4 배와 꽃 사이를 시간이 채우고 있어 배꽃은 하나지만 둘..

산책 1 · 2

* http://cafe.daum.net/duchon5292에서 옮김.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산책 · 2 / 洪 海 里 한발 한발 걸어가면 발로 읽는 책 가슴속에 비단길 펼치고 눈으로 듣는 책 마음속에 꽃길을 여니 줄 줄만 아는 산 책에 줄을 대고 한없이 풀어 주는 고요를 돌아보라 줄글도 좋고 귀글이면 또 어떤가 싸목싸목 내리는 안개, 그리고 는개 온몸이 촉촉이 젖어 천천히 걸어가면 산 책 속에 묻히리니, 입으로 듣고 귀로 말하라 인생은 짧고 산책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