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44

<시> 여름 기행

여름 紀行 洪 海 里 남으로 남으로 내달리는 차창 밖 푸른 산과 산 사이 강줄기 따라 대낮의 기름기 짙은 햇덩이는 탄다 포플러 숲을 지날 때면 젊은 시인들의 합창소리 부시고 논에 든 농부들의 청동빛 손 금빛 바람이 머릴 내밀고 있다 동구 밖 한 그루 느티 아래 한 마당 쏟아지는 매미소리 소나기 할아버지 손자가 잠에 취했다 칠석이 가까운 저녁 하늘엔 견우 직녀 눈물이라도 뿌리려는지 거북이 기고 있는 저수지 바닥 불볕이 내려 타면 탈수록 쇠뜨기 바랭이 개비름은 일어서고 피사리 김매기 농약뿌리기 손은 잠시 쉬일 날이 없어도 입추 지나 살진 바람 불어오는 날 한여름의 땀방울이 알알이 익어 하느님의 곳간까지 가득 채울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