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68

청주 가는 길

청주 가는 길 洪 海 里 플라타너스 기인 터널을 지나면 내 고향 淸州가 배처럼 떠 있고 상당산성 위로 고향 사람들은 만월로 빛난다 봄이면 연초록 연한 이파리들이 손을 모아 굴을 만드는 서정抒情 여름이면 초록빛 바닷속 아늑한 어머니 자궁으로 넉넉히 새끼들을 기르고 가을이면 서걱이는 갈빛 포근한 안개가 금빛 들을 감싸 안는 풍요豊饒 겨울이면 맑은 뼈마디로 장성한 자식들을 떠나 보내는 어버이처럼 흰눈을 쓰고 서 있는 고고孤高 플라타너스의 연륜의 이마 그 밑을 지나 고향에 닿으면 늘 그렇듯 무심천 물소리처럼 우암산 바람결처럼 비인 듯 충만한 그곳 사람들.

으악새

으악새 洪 海 里 바람에 일렁이는 은백의 머리칼 아름답게 늙은 사람 고운 사람아 저건 꽃이 아니라 차라리 울음이리 낮은 곳으로 펼치는 생명의 비단이여 구름으로 바람으로 굽이치는 만릿길 끊일 듯 들려오는 향기로운 단소 소리 가다가 돌아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면 수천수만 새 떼의 비상이네 물보라 피우는 능선의 파도이다가 풀밭에 달려가는 양 떼이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쓸쓸한 그리움이네 산기운 모아 뽑는 허이연 기침소리 저건 꽃이 아니라 차라리 울음이네. * 에서도 양 감각의 이미지는 자유자재로 구사되어 있다. 억새풀 같은 흔한 소재에서 참신한 상을 끌어내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생명의 비단에서 굽이치는 구름길이나 바람길, 새 떼의 비상, 물보라 이는 파도, 양 떼로 이어지는 시각적 표상과 단소소리와 기침소리,..

시인이여 詩人이여

시인이여 詩人이여 - 시환詩丸 洪 海 里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 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통일 살풀이춤

통일 살풀이춤 洪 海 里 1. 풀어라 풀어라 살을 풀어라 반세기 반신불수 버르적거리는 백두산 천지 한 손에 잡고 한라산 백록담 딴 손에 올려놓고 묘향 구월 설악 금강 지리산 가슴에 품어 북한산 도봉산 손을 잡아라 온갖 새들 꽃 속에 노래하고 노루 토끼 다람쥐 겁없이 뛰어노는 비무장지대 우거진 풀밭에 서서 안주 용천 예당 연백 경기평야 나주 김해 호남의 너른 들판에 서서 몸을 던져 풀어라 백두대간 바윗속 흐르는 물길이듯이 죽은 듯이 잠자던 푸나무들 봄이 오면 맥이 뛰어 푸르러지듯 두만강 낙동강 대동강 청천강 영산강 압록강 섬진강이 모두 한강으로 한강이 되게 살 풀어라 살 풀어라 혼을 던져 추기고 맺힌 한을 풀어 풀어 백두산 상상봉에 북을 놓고 물보라 푸르게 하늘까지 피우고 한라산 꼭대기에 북을 놓아 사슴 ..

<시> 살풀이춤

살풀이춤 洪 海 里 풀어라 풀어라 살을 풀어라 반세기 반신불수 버르적거리는 백두산 천지 한 손에 잡고 한라산 백록담 딴 손에 올려놓고 묘향 구월 설악 금강 지리산 가슴에 품어 북한산 도봉산 손을 잡아라 온갖 새들 꽃 속에 노래하고 노루 토끼 다람쥐 겁없이 뛰어노는 비무장지대 우거진 풀밭에 서서 안주 용천 예당 연백 경기평야 나주 김해 호남의 너른 들판에 서서 몸을 던져 풀어라 백두대간 바윗속 흐르는 물길이듯이 죽은 듯이 잠자던 푸나무들 봄이 오면 맥이 뛰어 푸르러지듯 두만강 낙동강 대동강 청천강 영산강 압록강 섬진강이 모두 한강으로 한강이 되게 살 풀어라 살 풀어라 혼을 던져 추기고 맺힌 한을 풀어 풀어 백두산 상상봉에 북을 놓고 물보라 푸르게 하늘까지 피우고 한라산 꼭대기에 북을 놓아 사슴 떼 덩실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