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투망도投網圖』1969 37

<시> 투망도投網圖

투망도投網圖 洪 海 里 無時로 木船을 타고 出港하는 나의 意識은 칠흑같은 밤바다 물결 따라 흔들리다가 滿船의 부푼 기대를 깨고 歸港하는 때가 많다. 投網은 언제나 첫새벽이 좋다 가장 신선한 고기 떼의 빛나는 옆구리 그 찬란한 純粹의 비늘 반짝반짝 재끼는 아아, 太陽의 눈부신 誘惑 千絲萬絲의 햇살에 잠 깨어 출렁이는 물결 나의 손은 떨어 바다를 물주름 잡는다. 珊瑚樹林의 海底 저 아름다운 魚群의 흐름을 보아, 층층이 흐르는 무리 나의 投網에 걸리는 至純한 고기 떼를 보아 잠이 덜 깬 파도는 土着語의 옆구릴 건드리다 아침 햇살에 놀라 離船하는 것을 가끔 본다. 破船에 매달려 온 失望의 歸港에서 다시 木船을 밀고 드리우는 한낮의 投網은 靑瓷의 항아리 動動 바다 위에 뜬 高麗의 하늘 파도는 고갤 들고 날름대며 ..

연꽃 피는 저녁에

연꽃 피는 저녁에 洪 海 里 십오야 달 밝으면 둥두럿이 벙그는 가슴 어찌 참아요 때가 오면 피고 지는 걸 달밤에 살라야 어찌 다 살라요 억겁의 번뇌를 정하시는 향기 땅에서 맺어 하늘로 오르는 이승의 연분을 달빛 하이얀 속에 나풀대는 내 모습 그대 간지르며 주변을 맴도는 바람소리 꽃 타고 날아가던 나의 하늘엔 아름다운 평화 몇 년 전 서늘히 잠들어 그대 곁에 누워 있거니 이승 그려 내려와 세상 정히다 꽃 피어 달밭에 솟아 올라서 둥두럿이 벙글어 어쩌자는가. -『투망도投網圖』(1969 선명문화사)

<詩> 배태마을 소묘

배태마을 소묘 洪 海 里 진흙배기 구빌 돌아 백고개로 향하면 햇살 밝은 산자락 어머님처럼 앉은 마을 명성사明星寺 예불소리에 잠이 깨고 날이 저문다 웃 절 청화사淸華寺 아침 저녁 염불소리 속세의 한을 사르는 백팔염주 천염주 단주 지동치는 가슴앓이 행자는 해 종일 목탁을 두드리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인적 끊긴 오솔길 맑은 물소리 구름 위 몇 리를 타는 저녁 놀 한 송이 꽃잎으로 눈이 밝은 사람들 철이 변할 때마다 산조로 이어오는 전설의 얘기 산골짜기 맑은 물은 충신효자문을 감돌아 흘러 솔잎 푸른 배태산 저녁 예불로 은은한 종소리 오늘도 천년 달빛이 하루같이 어린다. -『投網圖』(1969)

<시> 석탑 미학

석탑 미학石塔美學 - 芝薰 선생 영전에 洪 海 里 석탑 솔밭 아래로 펄럭이던 검은 두루마기 자락 이승의 바람을 안고 저승까지 그림자를 흔드시더니 이제 술 익은 저녁 마을의 하늘자락 속으로 훌훌히 숨 놓고 떠나가시다. 항상 시와 인생의 여운을 남기시던 강의실의 낭낭한 음성 얇고 하이얀 고깔은 서러이 가슴속에 접어 두고 역사 앞에 선 고고한 지조의 깃발 훤히 펄럭이고 있었거니……. 석탑에서 가르치던 돌의 미학은 자연의 경건과 사랑과 고전의 조용한 흐름과 민족의 지조를 위해 자유 정의 진리의 불을 안고 우리 가슴속 훨훨 타 올랐거니……. 빛을 부르는 새가 되어 푸른 하늘 찾아 맑은 목청으로 어두운 땅을 밝히실 아침 잠시 죽음 앞에 눈을 뜨고 있다가, 낙엽처럼 훌훌히 돌아가시다니 아아, 지훈 선생 아아, 지훈 ..

<시> 달처녀의 엽서

달처녀의 엽서 洪 海 里 암스트롱, 그대 이 몸의 꿈도 신비도 모두 부숴버리고 떠나가셨네. 내 가슴 한복판 그대 가장 귀한 씨앗을 뿌리고 사랑과 평화의 문을 열어놓고 60억의 눈들이 60억 개의 달이 되어 빛나는 지구로 돌아가셨네. 당신이 제 주변을 빙빙 돌면서 독수리가 하늘을 돌 듯 제 가슴을 쪼으려 할 때 이 몸은 부끄러워 혼이 났어요. 드디어 거대한 그대의 발이 이 몸을 밟고 신화이던 제 가슴의 문을 열었을 때 저는 깨달았어요. 사랑은 오래 오래 달아 올라서 모든 불가능을 부숴버리고 인간도 때로는 기계가 되는 것을. 신비스럽던 제 속살이 그대 손에 파여 들어날 땐 그냥 황홀 그것 몸을 떨며 넋을 잃고 말았어요. 그대는 온통 나의 넋을 앗아버리고 저만 남겨두고 돌아가시고 억겁을 기두리던 제 순정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