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403

바람의 세월

바람의 세월 洪 海 里  뒤돌아보면바람은 늘 한 쪽으로만 불었다 내가 하기보다네가 하기를 바랐고내가 해 주기보다네가 해 주기만 바랐다 그러다 보니바람 부는 날 가루 팔러 다니며바람을 잡아매려 하고그림자를 잡으려 들기 일쑤였다 바람 따라 돛도 달고바람 보고 침도 뱉으랬거늘바람벽에 돌이나 붙이려 했으니어찌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으랴 바람 안 부는 곳이 없고바람 앞의 티끌임을 내 어찌 몰랐을까.

12월 2024

12월 2024 洪 海 里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데잘난 사람들이 이리 많은 걸 보니난세는 난세인 모양이로고이제까지 태평성대라서 조용했던가저 인물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모를 일, 정말 모를 일이로다나라가 평화롭고질서가 잡혀 있고전쟁 위협이 없었던 것인가이제 군웅이 할거하려는 걸 보니나라가 바로 설 것인가아니면 망할 것인가국민을 위한 나라일까국민에 의한 나라일까진정 국민의 나라일까모를 일, 진정 모를 일이로다입만 열면 국민, 국민을 위하고자유 민주주의 경제요 외교인가한 해가 저무는데이러다 한 나라가 저무는 건 아닌지대한민국이여, 대한국민이여어디로 가고 있는가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푸른 시간의 발자국

푸른 시간의 발자국洪 海 里 꿈속에서 시를 한 편 한 편 읽고 있었다 저무는 동짓달 초여드레 새벽 세 시였다 가만히 보니 내가 찍어 놓은 것이었다 제목이 『푸른 시간의 발자국』이었다.                                              2024. 12. 08. * 참으로 오랜만에 꿈속에서 시를 읽었다.   시집 제목이 『푸른 시간의 발자국』이었다.  『시간의 푸른 발자국』이라 해도 좋겠다.

동짓달 초하루

동짓달 초하루 洪 海 里  뭘 먹을까걱정 말라 했거늘 하루 세 끼때우는 일 심심파적이라면좋으련만 사람 바뀌는 일어찌 쉬우랴!  * 12월 1일, 음력 동짓달 초하루! 내가 동짓달 초하루에 서 있다. 그러나 올해도 아직 섣달 한 달이 남아 있다.다 거두어 간 들판에 눈이 내렸다. 새들도 먹이 찾기가 어렵고 힘들겠다.     - 隱山.

실어증失語症

실어증失語症 洪 海 里얼마나 싫으면 말을 잊는가싫다 싫어 나는 네가 싫다 구름이 말한다그래 그래 나도 네가 싫다 바람이 말한다부모와 자식 사이남자와 여자 사이나와 우주 사이꽃과 나무와 새가 말이었고하늘과 바다와 산이 말이었다밥과 사랑과 미움과 그리움이 말이었다웃음과 울음과 아픔과 기쁨이 말이었다실어증에 걸린 사람들의 눈에는풍경은 흔들리기만 할 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눈을 뜨고 자는 붕어가 말한다세상이란 내 옆에 네가 있고나 아니면 너라고, 아니 우리라고무엇으로 입을 떼어 말문이 트이게 하나모두가 절단났다고 절벽으로 뛰어내리고 있다이제는 절망이라고 울음을 터뜨려도말을 잊은 너는 듣지 못한다한때는 침묵도 멋진 말이었지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얼떨결에 말해도 말이고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못 말한 것도 말인데싫다..

시비詩碑

시비詩碑 洪 海 里  저 크고 무거운 걸어찌 지고 가려고 가벼운 시 한 편그게 뭐라고 무거운 돌에 새겨세워 놓았나 "늬가 시를 알아?" 하고큰소리 칠 시인이 없나.- 월간 《우리詩》 2025. 1월호. * '시詩'라 하면 시요,  '시인詩人'이라 하면 모두 시인인 세상이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  세상에 시 아닌 글이 어디 있고, 시인 아닌 사람 어디 있는가?                                            * 우물 속의 달을 읊다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詠井中月우물 속의 달을 읊다이규보(李奎報, 1168~1241)山僧貪月色산에 사는 중이 달빛을 탐내幷汲一甁中물 긷는 병에 달까지 길어왔네到寺方應覺절에 도착하면 비로소 깨닫게 되리甁傾月亦空병을 기울이면 달도 없..

마지막 편지

마지막 편지 洪海 里  가으내 겨우내 너를 기다리다만나지 못하고 이제 간다고마지막으로 한 자 적어 남긴다 죽을 때까지는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라고사날 좋게 살 만큼 살아 보라고 세상에 특별할 게 뭐가 있다고저 혼자 못났다고 우는 것이냐꽃이나 푸나무가 우는 것 봤냐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너요세상의 중심이 바로 너요세상을 세상이게 하는 게 바로 너다.- 월간 《우리詩》 2025. 1월호.                                                                * 모든 시작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