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우리들의 말』1977 46

인수봉을 보며

인수봉을 보며 洪 海 里 봄이 오면 풀잎이 돋아나듯이 느글대는 피를 어쩔 수 없다 문득 차를 타고 4·19탑 근처를 서성거리다 인수봉을 올려다보면 그저 외연한 바위의 높이 가슴속 숨어 있는 부끄러움이 바람따라 똑똑히 되살아난다 백운대를 감고 도는 흰 구름장 벼랑에 버티고 선 작은 소나무 어둔 밤이 와도 움쩍 않고 서늘한 바람소리로 가슴속 검은 피를 느글대게 한다 부끄러운 나의 피를 돌게 한다 저 바위 아래 그늘 속 이름 모를 풀꽃도 때가 되면 스스로 피어나는데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나의 피여. - 시집 『우리들의 말』(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