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배꽃 洪 海 里 봄에 오는 눈발은 밤에 더 밝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는 나비 떼 새들도 날아와 우짖으면 달빛에 노 젓는 소리 하얗게 일어서고 깊은 산 시름 속에 젖는 한밤을 옷깃에 차는 달빛 그림자 눈썹 끝에 어리는 天上의 엽서.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우이동에서 우이동牛耳洞에서 洪 海 里 떨리는 손을 모아 어둠 속에서 신부의 옷을 벗기우듯 하나씩 하나씩 서서히 아주 서서히 인수봉과 백운봉에 걸친 안개옷을 걷어올리는 하느님의 커다란 손이 보인다 비가 개이면 푸르른 솔밭 위로 드디어 드러나는 허연 허벅지 백운대의 속살 젖을 대로 다 젖..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난蘭 난蘭 홍 해 리 삼경이러 네 곁에 서면 어디서 묵 가는 소리 들리고 꽃빛 심장을 드러낸 바람과 바닷소리도 홀홀 날려오느니. 별과 달과 모래알과 나무등걸이 모여 정한 물 한 대접에 얼굴을 비추어 보고 있다. 소리없이 부르는 노래 동양의 고전이여, 움직이지 않는 춤 초록빛 의미로 쌓는..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꽃 꽃 홍 해 리 이승의 꽃봉오린 하느님의 시한폭탄 때가 되면 절로 터져 세상 밝히고 눈 뜬 이들의 먼 눈을 다시 띄워서 저승까지 길 비추는 이승의 등불.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무용실 무용실 홍 해 리 햇살 출렁이는 음악실을 지나면 무용실, 비늘 반짝이는 물고기 떼 폭포를 거스르듯 하나 둘 셋 … 뛰어오르고, 하늘을 도는 느긋한 날개. 꽃이 핀다. 보리밭 이랑마다 푸르게 일어서는 토요일 오후. 들풀 냄새 소프라노 손가락 끝에 출렁이는 한 점 우주. (시집『바람 센 ..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섣달에 잠깨어 섣달에 잠깨어 洪 海 里 새벽녘 문뜩 잠이 깨이다 밖엔 때아닌 빗소리 후득이고 한 세대 묵혀온 철조망 녹슨 허리가 결린다 거기도 비가 오고 있는지 또 한 해가 가고 있는데 꺾인 갈대꽃을 흔드는 바람소리 잠 달아난 새벽녘 창백한 이마에 꽂히는 창백한 빗줄기 비인 가슴을 채우는 잠..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별곡 별곡別曲 홍 해 리 아버지를 산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 눈이 하얗게 깔렸다. 산새들은 마을로 내려오는데 아버지는 혼자서 산에 계셨다. 온 세상이 은빛 일색 갈길은 막막했다.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겨울밤의 꿈 겨울밤의 꿈 홍 해 리 이립리而立里 지나 불혹봉不惑峯에 올라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숲도 눈에 띄이지 않느니 눈이면 다 눈으로 알다 오늘은 온 세상이 칠흑빛 이제야 눈이 트이는 것인지 솔바늘 사이를 가는 헝클린 바람의 투명한 날개 가슴속엔 순진무구의 아이가 살아 그 빛나..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바늘과 바람 바늘과 바람 홍 해 리 내게 허공이 생길 때마다 아내는 나의 빈 자리를 용케도 찾아내어 그 자리마다 바늘을 하나씩 박아 놓습니다 한 개 한 개의 바늘이 천이 되고 만이 되어 가슴에 와 박힐 때마다 나는 신음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비인 들판을 달려 갑 니다 동양의 모든 고뇌는 다 ..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홍 해 리 갈비뼈 하나이던 너 이젠 나를 가득 채우고 압도하여 無明인 내가 나를 맞아 싸운다 불타는 뼈의 소리들이 이명으로 잉잉잉 울려오고 천으로 만으로 일어서고 있다 눈에 와 박히는 세상의 모든 물상이 허공중에 둥둥 떠오르고 꽃이 피는 괴로움 앞에..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