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137

신작 소시집 「나이 늘고 시는 줄고」/ 《우리詩》 2025. 1월호

월간 《우리詩》 2025년 1월호 신작 소시집 나이 팔십 외 5편洪 海 里  어제만 해도아무렇지도 않던 일오늘 갑자기 할 수 없는 나이그게 팔십이라네. 가난하면 가난에게 감사하고슬프면 슬픔에 고마워하는 나이보이는 대로 볼 수 있고들리는 대로 듣는 나이그게 팔십이라네. 마지막 편지가으내 겨우내 너를 기다리다만나지 못하고 이제 간다고마지막으로 한 자 적어 남긴다 죽을 때까지는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라고사날 좋게 살 만큼 살아 보라고 세상에 특별할 게 뭐가 있다고저 혼자 못났다고 우는 것이냐꽃이나 푸나무가 우는 것 봤냐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너요세상의 중심이 바로 너요세상을 세상이게 하는 게 바로 너다. 시비詩碑저 크고 무거운 걸어찌 지고 가려고 가벼운 시 한 편그게 뭐라고 무거운 돌에 새겨세..

「귀가 운다」 외 3편

귀가 운다 洪 海 里  귀도 외로우면속이 비어 울고 싶어지는가 귓속에 바람이 들어와둥지를 틀었는지 밤낮없이 소리춤을 추며 우니가렵고 간지러워 소리는 들리는데의미는 오지 않는다.-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귀가 지쳤다 洪 海 里  들을 소리안 들을 소리까지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이제 귀가 운다.-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 시 해설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

막걸리 詩 9篇

마시는 밥- 막걸리 홍 해 리 막걸리는 밥이다논두렁 밭두렁에 앉아하늘 보며 마시던 밥이다물밥!사랑으로 마시고눈물로 안주하는한숨으로 마시고절망으로 입을 닦던막걸리는 밥이다마시는 밥!-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막걸리 洪 海 里  텁텁한 탁배기 가득 따라서한 동이 벌컥벌컥 들이켜면뜬계집도 정이 들어 보쟁이는데한오백년 가락으로 북이 우누나가슴에 불이 붙어 온몸이 달아모닥불로 타오르는 숯검정 사랑꽹과리 장고 지잉지잉 징소리한풀이 살풀이로 비잉빙 돌아서상모도 열두 발로 어지러워라탁배기 동이 위에 동동動動 하늘.-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막걸리 洪 海 里  할아버지 그을린 주름살 사이사이시원스레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쑤욱쑥 솟아올라 몸 비비는 벼 포기들떼개구리 놀고 있는 무논에 서서잇사..

《우리詩》2022. 12월호 '홍해리 신작 소시집'에서

♧ 나는 날마다 무덤을 짓는다 해가 지면문을 닫고 하루를 접는다 하루는 또 하나의 종점나는 하나의 무덤을 짓는다 문 연 채 죽는 것이 싫어저녁이면 대문부터 창문까지 닫고 다 걸어 잠근 고립무원의지상낙원을 만드노니 둘이 살다, 셋, 넷, 다섯,이제는 다들 떠나가고 나만 혼자, 홀로, 살다보니집이 천국의 무덤이 되었다.  ♧ 단현斷絃 줄 하나 끊어지니천하에 소리가 나지 않네 내 귀가 먹은 것인지내일 없는 어제가 가슴을 치니 잠이 안 와 괴롭고잠들면 꿈으로 곤비하네 말이 안 되는 세상이라도물 흐르듯바람 일 듯 영혼은 이제 유목민으로나두 집 건너 살아라산산 강강 살아라 그렇게나 가야지노량으로 가야지.  ♧ 적멸보궁 밤새껏 폭설이 내린이른 아침부산한 고요의 투명함한 마리 까치 소리에툭,눈이 떨어져 내리는영원한 처..

신작 소시집《우리詩》2022. 1월호(415호)

[홍해리 신작 소시집] ♧ 푸른 하늘 무지개 늙바탕에 한무릎공부했다고 깔축없을 것이 어찌 없겠는가 세상 거충대충 살아도 파근하고 대근하기 마련 아닌가 나라진다 오련해진다고 징거매지 말거라 한평생 살다 보면 차탈피탈 톺아보게 되느니 더운 낮에 불 때고 추운 밤에 불 빼는 어리석은 짓거리 하지 마라 씨앗은 떨어져야 썩고 썩어야 사는 법 때 되면 싹 트고 열매 맺느니. ♧ 독거놀이 오늘도 혼자 앉아 물밥 한 병, 닭가슴살 안주해서 한 끼를 때우는데 겨우내 바삭바삭 가물다 모처럼 내리는 비에 귀 열고 속 아닌 속까지 적시니 마당가 청매 가지마다 꽃봉오리 뽀얗게 부풀고 나무 아래 부추와 돌나물도 숨이 가쁜데 대문을 열어 놓았나 현관문은 열려 있나 내다보아도 오는 사람 없고 빗소리만 귀를 씻어 주노니 유언을 하듯 ..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 허향숙(시인)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찔레꽃洪 海 里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흰 면사포 쓰고고백성사하고 있는청상과부 어머니, 까막과부 누이윤이월 지나춘삼월 보름이라고소쩍새도 투명하게 밤을 밝히는데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ㅡㅡㅡㅡㅡ아직도 내 안에는 슬픔이 가득한 것인지 많은 것들 중 늘 슬픔에 맨 먼저 마음을 빼앗긴다. 마음을 기울인다. 마음을 준다.홍해리 선생님은 사단법인 우리시회 이사장님으로 20여 권의 시집을 출간하신 중견시인이시다. 새해부터 '우리詩'에서 낭송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어 뵙게 되었는데 자상하심과 넉넉하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학자다운 면모에 마음 숙여지는 분이다. 시집 또한 깊은 사유의 맥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고운 인연에 감사드리며 더욱 강건하심을 기도..

막걸리 詩 9편

마시는 밥- 막걸리 홍 해 리 막걸리는 밥이다논두렁 밭두렁에 앉아하늘 보며 마시던 밥이다물밥사랑으로 마시고눈물로 안주하는한숨으로 마시고절망으로 입을 닦던막걸리는 밥이다마시는 밥!-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막걸리洪 海 里  텁텁한 탁배기 가득 따라서한 동이 벌컥벌컥 들이켜면뜬계집도 정이 들어 보쟁이는데한오백년 가락으로 북이 우누나가슴에 불이 붙어 온몸이 달아모닥불로 타오르는 숯검정 사랑꽹과리 장고 지잉지잉 징소리한풀이 살풀이로 비잉빙 돌아서상모도 열두 발로 어지러워라탁배기 동이 위에 동동動動 하늘.-  『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막걸리洪 海 里 할아버지 그을린 주름살 사이사이시원스레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쑤욱쑥 솟아올라 몸 비비는 벼 포기들떼개구리 놀고 있는 무논에 서서잇사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