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565

명창정궤明窓淨几

명창정궤明窓淨几 洪 海 里 살기 위하여잘 살기 위하여 쓰지 말고, 죽기 위해잘 죽기 위해, 쓰고, 또써라. 한 편 속의 한평생,인생이란 한 권의 시집을!- 월간 《우리詩》 2019. 12월호.-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 잘 죽기 위해서는 우선 잘 살아야겠지요.좋은 시를 쓰려면 또한 잘 살아야겠지요.잘 죽기 참 어려운 일이 아닌지 모르겠군요.시를 쓰는 일도 그렇지 싶습니다.- 隱山. 사랑과 고독으로외롭던 청춘, 그 어두운 밤별은 빛나고별은 빛났건만고독은 멈추지 않았다시절을 불 태우던 때부터,까마득한 그 시절까지목마를 타고 하늘을 날고춤추는 술병이 쓰러지던 때까지내 고독은 멈추지 않았다그 시절한 편에 우뚝 서 계신알지 못하고 뵙지도 못한진작, 스승 같은 존재였다오십 년 전 노트 속에서끝내..

손톱깎기

손톱 깎기- 치매행致梅行 · 5 洪 海 里  맑고 조용한 겨울날 오후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하고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가녀린 손가락마다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함께 산 지 마흔다섯 해처음으로,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 줍니다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씀벅씀벅,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 시집『치매행致梅行』(2015, 황금마루) ◇ 시 해설금혼식을 하는 시인이 마흔다섯 해를 함께 한 시점에 아내에 대한 시를 쓴 것이다. 손톱을 깎는 작은 일이지..

홍해리(1941~, 충북 청원) / 이동훈(시인)

홍해리(1941-, 충북 청원)이 동 훈(시인)  다음은 란 제목의 임보 시인의 글이다. 세이천洗耳泉 오르는 솔밭 고개바다만큼 바다만큼 난초蘭草밭 피워 놓고한란寒蘭, 춘란春蘭, 소심素心, 보세報歲흐르는 가지마다 그넷줄 얽어구름을 박차고 하늘을 날다빈 가슴에 시가 익으면열 서넛 동자놈 오줌을 싸듯세상에다 버럭버럭 시를 갈긴다. 졸시집 『은수달 사냥』(1988)에 수록되어 있는 「난초 書房 海里」라는 글인데 난정에 대한 인상을 8행의 짧은 시 속에 담아 본 것이다. 그가 난에 심취한 것은 세상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때는 남도의 산하를 매 주말 누비며 채취해 온 기천 분의 춘란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집보다 넓은 온실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蘭丁’이라고 칭호한 것이다. 그러니 난정이 난을..

오형근 시집 『거울 앞에 섰을 때는 열중쉬어는 안 된다』의 表辭

오형근 시집 『거울 앞에 섰을 때는 열중쉬어는 안 된다』표사表辭 "'시인의 말'을 쓰려고 하니/ 자꾸/ 작아지네./ 부끄러워진다."라는 시인의 말을 보면오형근 시인이 어떤 사람인가, 어떤 시를 쓰는 시인인가를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시에 대한 마음가짐이 곧고 굳으며 세상을 향한 생각과 정신이 착하고 바르구나 하는 느낌이다."시는 짧고 쉽고 재미있고 깊어야 한다."는 시론을 이번 시집의 작품을 통독하면서 자주 되새겨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시를 누가 함부로 말하고 논하고 평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주위를 가감없이 그려내는 자전적 서술과 담백한 비유로 간결하게 나타내는 표현과 올바른 삶을 지향하는 그의 철학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짧은 시라고..

가을 들녘에 서서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 버리고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스스로 빛이 나네.     - 월간 《牛耳詩》 2002. 11월호(제173호) 게재.    - 시집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 시가 전하는 말  홍해리의 시 「가을 들녘에 서서」는 마음을 비움으로써 얻는 내면의 충만함과 평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삶의 본질과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1.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첫 구절은 감각을 초월한 세계를 암시합니다. 시각과 청각처럼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감각을 차단하면, 오히려 편견없이 모든 것을 있는..

일탈逸脫

일탈逸脫 洪 海 里   1  귀 눈 등 똥  말 멱 목 발  배 볼 뺨 뼈  살 샅 손 숨  씹 이 입 좆  침 코 턱 털  피 혀 힘---  몸인 나,  너를 버리는데 백년이 걸린다  그것이 한평생이다.  2  내가 물이고  꽃이고 불이다  흙이고 바람이고 빛이다.  그리움 사랑 기다림 미움 사라짐 외로움 기쁨 부끄러움슬픔 노여움과 눈물과 꿈, 옷과 밥과 집, 글과 헤어짐과아쉬움과 만남 새로움 서글픔  그리고 어제 괴로움 술 오늘 서러움 노래 모레 두려움춤 안타까움 놀라움 쓸쓸함  (내일은 없다)  그리고 사람과 삶, 가장 아름다운 불꽃처럼  우리말로 된 이름씨들 앞에서  한없이 하릴없이 하염없이 힘이 빠지는 것은  아직 내게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한 그릇의 밥이 있어서일까  일탈이다, 어차피 ..

11월을 노래함 - 낙엽

11월을 노래함- 낙엽홍 해 리울며불며 매달리지 마라의초롭던 잎의 한때는 꿈이었느니때가 되면 저마다 제 갈 길로 가는 법애걸하고 복걸해도 소용없는 일차라리 작별인사를 눈으로 하면하늘에는 기러기 떼로떼로 날고 있다한겨울에 꼿꼿이 서 있기 위해, 나무는봄부터 푸르도록 길어올리던 물소리자질자질 잦아들고 있다몸도 마음도 다 말라버려서비상 먹은 듯, 비상을 먹은 듯젖은 몸의 호시절은 가고 말았다무진무진살아 보겠다고 늦바람 피우지 마라지빈하면 어떻고 무의하면 어떠랴어차피 세상은 거대한 감옥너나 나나 의지도 가지도 없는허공의 사고무친 아니겠느냐축제는 언제나 텅 빈 마당파장의 적막이 그립지 않느냐죽은 새에게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듯모든 것이 멀리 보이고나도 이제 멀리 와 있다세상의 반반한 것들도 어차피 반반. * 홍..

김석규 시집 『누옥을 위한 헌사』 머릿말

이번의 '책머리에'는 畏友 홍해리 詩伯의 옥고를 실어대신한다. 시천詩泉- 曉山 김석규 洪 海 里  나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새벽부터 솟아올라 넘쳐 내리는 소리 청청하거니물은 그칠 줄 모르고 흐르고 흘러때로는 폭포가 되고아이들을 만나면 분수가 되고먼 길 가는 젊은 나그네 목도 축이며머지않아 바다에 이르면갈매기 노랫소리로 수놓은시 바다[詩海]를 이루리라만 편의 시가 출렁이는망망대해 반짝이는 윤슬이여신선한 파돗소리 따라바닷고기들 춤사위 찬란하고하늘도 오색 구름을 피워시인에게 고맙다 고맙다 화답하누나.                2024, 초여름에                  홍 해 리 頓首. 頓首.                                       甲振 盛夏에                ..

고집불통 / 유자효(시인)

고집불통- 치매행致梅行 · 121 洪 海 里   남편이나 자식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송두리째 잊어버리는 사람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속이 상해서속이 다 타서뭉그러진 마음으로 생각, 생각에 젖다여보! 하고 부를 수 있고함께 있는 것만도 복이지 싶어안타까운 마음을 접으려 애를 써봅니다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하는 원망도 덮고우리의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아도그냥 바라다보려 합니다피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촛불을 밝혀도등불을 내걸어도세상은 칠흑의 황야입니다한여름인데 겨울옷을 입고 나서는 아내막무가내 옷을 갈아입으려 들지 않습니다끝내,내가 지고 만 채 유치원 차에 태웁니다아내의 세상은 한여름에도 추운가 봅니다.  * 제가 나가고 있는 서울 중구문화원 시 창작반에서 한 수강생으로부터시집 한 권을 받았습니..

홍해리 시인

홍해리 시인 난정기蘭丁記임 보 (시인)세이천洗耳泉 오르는 솔밭 고개바다만큼 바다만큼 난초蘭草밭 피워 놓고한란寒蘭, 춘란春蘭, 소심素心, 보세報歲흐르는 가지마다 그넷줄 얽어구름을 박차고 하늘을 날다빈 가슴에 시가 익으면열 서넛 동자놈 오줌을 싸듯세상에다 버럭버럭 시를 갈긴다.졸시집『은수달 사냥』(1988)에 수록되어 있는 「난초 書房 海里」라는 글인데 난정에 대한 인상을 8행의 짧은 시 속에 담아 본 것이다. 그가 난에 심취한 것은 세상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때는 남도의 산하를 매 주말 누비며 채취해 온 기천 분의 춘란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집보다 넓은 온실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蘭丁’이라고 칭호한 것이다. 그러니 난정이 난을 즐긴다는 것은 특별한 정보랄 것도 없다. 이 글의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