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560

일탈逸脫

일탈逸脫 洪 海 里   1  귀 눈 등 똥  말 멱 목 발  배 볼 뺨 뼈  살 샅 손 숨  씹 이 입 좆  침 코 턱 털  피 혀 힘---  몸인 나,  너를 버리는데 백년이 걸린다  그것이 한평생이다.  2  내가 물이고  꽃이고 불이다  흙이고 바람이고 빛이다.  그리움 사랑 기다림 미움 사라짐 외로움 기쁨 부끄러움슬픔 노여움과 눈물과 꿈, 옷과 밥과 집, 글과 헤어짐과아쉬움과 만남 새로움 서글픔  그리고 어제 괴로움 술 오늘 서러움 노래 모레 두려움춤 안타까움 놀라움 쓸쓸함  (내일은 없다)  그리고 사람과 삶, 가장 아름다운 불꽃처럼  우리말로 된 이름씨들 앞에서  한없이 하릴없이 하염없이 힘이 빠지는 것은  아직 내게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한 그릇의 밥이 있어서일까  일탈이다, 어차피 ..

11월을 노래함 - 낙엽

11월을 노래함- 낙엽홍 해 리울며불며 매달리지 마라의초롭던 잎의 한때는 꿈이었느니때가 되면 저마다 제 갈 길로 가는 법애걸하고 복걸해도 소용없는 일차라리 작별인사를 눈으로 하면하늘에는 기러기 떼로떼로 날고 있다한겨울에 꼿꼿이 서 있기 위해, 나무는봄부터 푸르도록 길어올리던 물소리자질자질 잦아들고 있다몸도 마음도 다 말라버려서비상 먹은 듯, 비상을 먹은 듯젖은 몸의 호시절은 가고 말았다무진무진살아 보겠다고 늦바람 피우지 마라지빈하면 어떻고 무의하면 어떠랴어차피 세상은 거대한 감옥너나 나나 의지도 가지도 없는허공의 사고무친 아니겠느냐축제는 언제나 텅 빈 마당파장의 적막이 그립지 않느냐죽은 새에게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듯모든 것이 멀리 보이고나도 이제 멀리 와 있다세상의 반반한 것들도 어차피 반반. * 홍..

김석규 시집 『누옥을 위한 헌사』 머릿말

이번의 '책머리에'는 畏友 홍해리 詩伯의 옥고를 실어대신한다. 시천詩泉- 曉山 김석규 洪 海 里  나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새벽부터 솟아올라 넘쳐 내리는 소리 청청하거니물은 그칠 줄 모르고 흐르고 흘러때로는 폭포가 되고아이들을 만나면 분수가 되고먼 길 가는 젊은 나그네 목도 축이며머지않아 바다에 이르면갈매기 노랫소리로 수놓은시 바다[詩海]를 이루리라만 편의 시가 출렁이는망망대해 반짝이는 윤슬이여신선한 파돗소리 따라바닷고기들 춤사위 찬란하고하늘도 오색 구름을 피워시인에게 고맙다 고맙다 화답하누나.                2024, 초여름에                  홍 해 리 頓首. 頓首.                                       甲振 盛夏에                ..

고집불통 / 유자효(시인)

고집불통- 치매행致梅行 · 121 洪 海 里   남편이나 자식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송두리째 잊어버리는 사람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속이 상해서속이 다 타서뭉그러진 마음으로 생각, 생각에 젖다여보! 하고 부를 수 있고함께 있는 것만도 복이지 싶어안타까운 마음을 접으려 애를 써봅니다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하는 원망도 덮고우리의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아도그냥 바라다보려 합니다피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촛불을 밝혀도등불을 내걸어도세상은 칠흑의 황야입니다한여름인데 겨울옷을 입고 나서는 아내막무가내 옷을 갈아입으려 들지 않습니다끝내,내가 지고 만 채 유치원 차에 태웁니다아내의 세상은 한여름에도 추운가 봅니다.  * 제가 나가고 있는 서울 중구문화원 시 창작반에서 한 수강생으로부터시집 한 권을 받았습니..

홍해리 시인

홍해리 시인 난정기蘭丁記임 보 (시인)세이천洗耳泉 오르는 솔밭 고개바다만큼 바다만큼 난초蘭草밭 피워 놓고한란寒蘭, 춘란春蘭, 소심素心, 보세報歲흐르는 가지마다 그넷줄 얽어구름을 박차고 하늘을 날다빈 가슴에 시가 익으면열 서넛 동자놈 오줌을 싸듯세상에다 버럭버럭 시를 갈긴다.졸시집『은수달 사냥』(1988)에 수록되어 있는 「난초 書房 海里」라는 글인데 난정에 대한 인상을 8행의 짧은 시 속에 담아 본 것이다. 그가 난에 심취한 것은 세상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때는 남도의 산하를 매 주말 누비며 채취해 온 기천 분의 춘란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집보다 넓은 온실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蘭丁’이라고 칭호한 것이다. 그러니 난정이 난을 즐긴다는 것은 특별한 정보랄 것도 없다. 이 글의 핵심..

싸리꽃

싸리꽃 洪 海 里 혼자서 꽃다발을온몸으로 받쳐들고길가에 서서몸 굽혀 절하듯한들거리고 있는싸리나무꽃홍자색 그리움으로하늘까지 쓸고 있네싸리비,꽃싸리비 되어.홍해리 시인의 싸리꽃이라는 시랍니다싸리꽃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한 멋진 시로감탄 ~ 또 감탄이네요네 ~ 맞아요콩과의 낙엽관목으로 "싸리꽃" 아니 ~"싸리나무꽃" 이라고 해야 하나요잎겨드랑이에서 홍자색 꽃송이가 꽃다발처럼몽글 몽글 피어서 자태를 뽐내는구랴민초들의 애환과 정서가 깃들어 있는 이 친구는키가 큰 "참싸리" 땅에 바싹붙은 "땅비싸리" 등20여 종이 어디서나 흔히 보이죠그래요 ~민초의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되어 친근한삼태기, 소쿠리, 발대 등 농기구에 ~싸리비를 만들어 마당 쓸고 ~고기발 만들어 천렵하고 ~울타리와 사립문도 만들고 ~무었보다 아이들이 무..

자벌레 <감상> 나병춘(시인)

자벌레   홍 해 리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허물고,다시 쌓았다무너뜨린다.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한평생의 길,山은 몸속에 있는무등無等의 산이다.   한 마리 자벌레를 본다.저 자그마한 몸뚱어리로푸른 산을 만들고바다를 만들고 벌판을 만든다.몸 자체가 길이고 강이고 시간이다.구부리면 산이 되고쫙 펴면 길게 뻗쳐 지평선이 된다.작은 몸 속에 도사린 우주를새로이 발견한 시인의 눈,끊임없이 쌓았다 무너뜨리는시詩의 산을'자벌레'로 은유했으리라.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저 꾸물꾸물한 움직임은그 얼마나 순정하고 맑고 눈물겨운가?無等의 산속 오솔길은또 얼마나 그윽하고 향기로운 것인가?그 어딘가 숨어있는 옹달샘은또 얼마나 새콤달콤할 것인가?몰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푸른 잎사귀 속에서꼼지락거리며 쬐끄만 자벌레들은자신의 길을 ..

귀가 지쳤다 / 뉴스 경남 2024.07.01.

뉴스 경남조승래 시인의 시통공간(詩通空間) 127 - 홍해리기자명 김효빈 기자  입력 2024.07.01.귀가 지쳤다홍 해 리  들을 소리안 들을 소리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도 쉴 새 없이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이제 귀가 운다.- 월간 《우리詩》 1987 창간, 2024. 04, 430호 ◇ 시 해설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를 줄창 듣기만하는 귀의 수동적 한계성을 말..

허수아비

허수아비 홍 해 리 나이 들면 그리움도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면 무서운 것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막상 나이 들고 보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빈 들녘에 홀로 서서 낡은 옷자락만 바람에 흐느낍니다 그래도 마음은 가득하니 짜장 부자입니다. - 시집 『정곡론』(2020, 도서출판 움) * 허수아비의 노래 그냥 그렇게 없이 살아도 정이 있었고 떡 한 조각도 서로 나누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는 지난 시절이지만 풍요 속에 가난은 신의 균형일까. 이 넉넉한 물질 세상에 오히려 더 재미없다는 사람들의 윤택한 절규이다. 그리움과 무서움은 마음이 연한 감성의 자리라서 나이 들수록 고목처럼 마르고 거칠어지지만 나이 들어도 그리웁고 무섬타는 여린 마음도 있음이라. 그러나 텅 빈 들녘에 홀로 선 허수아비처럼 낡..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 치매행致梅行 · 187 홍 해 리 어쩌다 실수로 아내의 치매약을 먹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하염없이 거리를 헤맸습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일도 차를 타는 것도 다 잊은 상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우적허우적거리다 때로는 허공을 날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길을 잃고 헤맨 아내 그 뒤를 쫓아다녔는지도 모릅니다 여덟 시간 미아가 되었던 아내의 긴 세월을 하룻밤 꿈으로 대신했나 봅니다 아내의 치매약으로 다른 한세상을 구경한 내가 약도 없는 치매환자가 되어 환한 대낮에 길을 잃고 허청댑니다. - - 詩選集 (2021, 놀북) - 원시 출처: 시집 (2017) *홍해리(1942, 충북 청주 생) 1969년 시집 로 활동시작. 시집 外 다수. #홍해리 #치매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