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집중조명 자료

<시> 洪海里 자선 대표작 10편

洪 海 里 2011. 3. 31. 04:16

<洪海里 자선 대표작 10편>

 

투망도投網圖

 

 

무시로 목선을 타고
출항하는 나의 의식은
칠흑같은 밤바다
물결 따라 흔들리다가
만선의 부푼 기대를 깨고
귀향하는 때가 많다

투망은 언제나
첫새벽이 좋다
가장 신선한 고기 떼의
빛나는 옆구리
그 찬란한 순수의 비늘
반짝반짝 재끼는
아아, 태양의 눈부신 유혹
천사만사의 햇살에
잠 깨어 출렁이는 물결
나의 손은 떨어
바다를 물주름 잡는다

산호수림의 해저
저 아름다운 어군의 흐름을
보아, 층층이 흐르는 무리
나의 투망에 걸리는
지순한 고기 떼를 보아

잠이 덜 깬 파도는
토착어의 옆구릴 건드리다
아침 햇살에 놀라
이선하는 것을 가끔 본다

파선에 매달려 온
실망의 귀항에서
다시 목선을 밀고 드리우는
한낮의 투망은
청자의 항아리
동동 바다 위에 뜬
고려의 하늘
파도는 고갤 들고 날름대며
외양으로 손짓을 한다

언제나 혼자서 항해하는
나의 목선은
조난의 두려움도 없이
강선처럼 파도를 밀고 나간다

저 푸르른 바다
해명에 흔들리는 하오의 투망
고층 건물의 그늘에서
으깨지고 상한 어물을
이방인처럼 주어 모은 손으로
어기어차 어기어차
다시 먼 바다로 목선을 민다

어부림을 지나
수평선으로 멀리 나갔다가
조난 당한 선편과
다시 기운 투망
난파된 밀수선에서 밀려온 밀어와
바닷바람에 쩔은 바다 사람들의
걸걸한 말투
소금 내음새

갈매기 깃에 펄럭이는
일몰의 바다
관능의 춤을 추는 바다
둥 둥 두둥 둥 둥
푸른 치맛자락 내둘리며
흰 살결 속을 들내지 않고
덩실덩실 원시의 춤을 춘다
그때 나의 본능은 살아
하얀 골편이 떠오르는
외양에서 돌아온다

만선이 못 된 뱃전에서 바라보면
넋처럼 피는 저녁 노을
오색찬연한 몇 마리의 열대어
그들의 마지막 항의
해질 녘 나의 투망에 걸린
이 몇 마리의 파닥임을

서천엔 은하
은하직녀의 손가락 가락
밤바다를 두드리고 있다
해면에 흐르는 어부사
칠흑 만 길 해곡에까지
그곳에 흐르는 어군
물 가르며 물 가르며
나의 의식을 흔들고 있다

나의 곁을 지나는 어선의
휘파람 소리……
휘익휙 나의 허전한 귀항을
풀 이파리처럼 흔들고 있다만

찢겨진 투망을 걷어 올리며
닻을 내리는 나의 의식은
찬란한 어군의 흐름 따라
싱싱한 생선의 노랫가락을 그려
다시 투망을 드리운다
가장 신선한 새벽 투망을!

                   - 시집『投網圖』(1969)

다시 가을에 서서

 

샐비어 활활 타는 길가 주막에
소주병이 빨갛게 타고 있다
불길 담담한 저녁 노을을
유리컵에 담고 있는 주모는
루비 영롱한 스칼릿 세이지빛
반짝이는 혀를 수없이 뱉고 있다
그미의 손톱이 튀어나와
어둠이 되고 파도가 되고 있다
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석류꽃처럼 피던
그미의 은빛 넋두리가
드디어 하늘을 날고 있다
이슬을 쫓는 저녁 연기도
저문 산천의 으스름으로 섞여
꽃잎은 천의 바다를 눈썹에 이고
서른하나의 파도
허허한 내 오전의 미련을
부르르부르르 경련을 하게 한다.
                       - 시집『花史記』(1975)


화사기花史記

 

하나

처음 내 가슴의 꽃밭은
열여덟 살 시골처녀
그 환한 무명의 빛
살 비비는 비둘기 떼
미지의 아득한 꿈
흔들리는 순수의 밀향密香
뿌연 새벽의 불빛
즐거운 아침의 연가
혼자서 피아프게 뒤채이던 늪
아침까지 출렁이며 울부짖는
꽃의 바람, 드디어의 개문開門.



꽃밭의 꽃은 항상
은밀한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눈썹은 현악기
가벼운 현의 떨림으로
겨우내 기갈의 암흑 속에서
눈물만큼이나 가벼이 지녀온
나약한 웃음을,
잔잔한 강물소리를, 그리고 있었다
조용한 새벽을 기다리는
꽃씨도 꽃나무도
겨울을 벗고 있었다
눈은 그곳에도 내리고
강물 위에도 흔들리며 쌓이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 머물렀던 꽃밭엔
안개가 천지 가득한 시간이었다
돌연한 바람에 걷히는 안개
내해內海의 반짝이는 시간의 둘레에서
찢어지는 울음을 울고 있었다
기인 겨울의 인내 속에서 빚은
푸른 비늘이 깜빡이는 잠
밤새워 울던 두견이 깨고 있었다
어느 꿈결에서든가
맨살로 불타는 목청이
깊이깊이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생명은 안개 속에서
온 세상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꽃밭에는 오히려 향그런 불길,
불이 타오르고 있다
오랜 세월의 흐름은
순수한 어둠 속에서 해를 닦아
꿈 속의 원시림을 밝히고 있다
어둠 속에서 밝게 피는
한 잎 두 잎의 웃음
웃음의 이파리가 날리는 숲
밤을 먹은 작은 새들이
금빛 햇발을 몇 개씩 물고 있다
황홀한 아침이면
고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다섯

수를 놓는
아내의 잠은 항상 외롭다
수틀 속 물오른 꽃대궁마다
태양이 껴안겨 있다
손마다 가득 괴는 가슴의 설움
병처럼 깊어 더욱 외롭다
고물고물 숨쉬는 고요
사색의 이마는 꽃보다 고운
여름의 꿈이 맺혀 있다
꽃은 죽어 여름을 태우고
꿈보다 예쁜 불을 지피고 있다.

여섯

여름바람은 느릿느릿 걸어서 온다
한밤 창가에 흐르는 바람소리
눈을 가리우고
자그만 하늘과 땅을 열고 있다
가을이 오는 꽃밭
겨울 준비를 하는 사철나무
속으로 속으로 잠을 깁는다
성숙한 날개를 자랑하는 잠
천둥도 번개도 멎은
한여름밤의 해일도 잠든
하늘에는 은밀한 속삭임뿐.

일곱

겨울 열매로 가득찬 나의 눈
마을마다 아낙들이 치마를 펴
모든 신비와 향수를 맞고 있다
신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속에서 꿈을 빚는다
빨간 꽃도 되고
하얀 꽃, 밀감나무도 된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미완의 회화
나의 눈은 언제나 허전하다
죽음과도 친한 나의 잠
나의 꽃밭은 텅 비어 있다.

                     - 시집『花史記』(1975)

 

 

무교동武橋洞 · 1

 

빛나는 물, 빛인 물, 너 물이여
별인 물, 달인 물, 바람인 물, 불인 물,
무의미의 물이여
아득한 심장에 타는 불의
찬란한 불꽃이 잠들 때까지.

안개 속에서 누가 신방을 차리고
하염없음과 입맞추고 있다
바다에 익사한 30대 사내들
일어서는 손마다 별이 떨어지고
달이 깨어지고 있다
킬킬킬 무심한 저 달빛이
귀에 와 죽은 소리로 울며
바람이 되고
불이 되어 타고 있다.

십년도 천년도 네게는 꽃잎이어니
아픔과 잊음이 문을 열고
죽음까지도 황홀한 빛으로 빛나느니.

토요일밤과 북소리와 오류와 망각이여
그대들은 언제나 빈객이다
깊디 깊은 늪가의 수목들은 쓰러지고
뿌리마다 뿌리채 뽑히우고 있다.

물과 불의 영원한 친화를 위하여
밝음과 어둠의 평화를 위하여
모래 속을 헤매어 온 너의 의미가
오늘 밤은 꿈을 꾸리라 꿈꾸는 꿈을
빨갛게 익은 사과 두 알이 빠개지는 꿈을.

빛나는 물, 빛인 물, 무의미의 물인 너
아득한 심장에 혼자서 타는 불의
찬란한 불꽃이 죽을 때까지.

                     - 시집『武橋洞』(1976)

난초꽃 한 송이 벌다


 

처서가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반생을 비운 자리에 난초
꽃 한 송이 소리없이 날아와 가득히 피어납니다 많은
세월을 버리고 버린 물소리 고요 속에 소심素心 한 송
이 속살빛으로 속살대며 피어납니다 청산가리 한 덩이
가슴에 품고 밤새도록 달려간다 한들 우리가 꽃나라에
정말 닿을 수 있겠으랴만,

피어나는 꽃을 보고
그대는 꽃이 진다 하고
나는 꽃이 핀다 하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면서
목숨은 피어나는데 ……,

참 깊은 그대의 수심水深
하늘못이네.

우리가 본시부터
물이고 흙이고 바람이 아니었던가
또는 불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물빛과 하늘빛 속에는 불빛도 피어나 황토빛
내음까지 실렸습니다 올해에도 여지없이 처서處暑가 돌아
와 산천초목들이 숨소리를 거르는데 늦꽃 소심 한 송이 

피어 깊이깊이 가슴에 들어와 안깁니다.

푸르르르르 백옥 같은 몸을 떨며 부비며 난초꽃 한 송이 

아프게 피었습니다.

                                    - 시집『愛蘭』(1998)

 

봄, 벼락치다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 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 시집『봄, 벼락치다』(2006)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시집『푸른 느낌표!』(2006)

 

호박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개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털이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 시집『황금감옥』(2008)

방짜징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 시집『비밀』(2010)

 

 

 

수련睡蓮 그늘

 

수련이 물위에 드리우는 그늘이

천 길 물속 섬려한 하늘이라면

칠흑의 아픔까지 금세 환해지겠네

그늘이란 너를 기다리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거문고 소리 아니겠느냐

그 속에 들어와 수련꽃 무릎베개 하고

푸르게 한잠 자고 싶지 않느냐

남실남실 잔물결에 나울거리는

천마天馬의 발자국들

수련잎에 눈물 하나 고여 있거든

그리움의 사리라 어림치거라

물속 암자에서 피워올리는

푸른 독경의 소리 없는 해인海印

무릎 꿇고 엎드려 귀 기울인다 한들

저 하얀 꽃의 속내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시름시름 속울음 시리게 삭아

물에 잠긴 하늘이 마냥 깊구나

물잠자리 한 마리 물탑 쌓고 날아오르거든

네 마음 이랑이랑 빗장 지르고

천마 한 마리 가슴속에 품어 두어라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

                                          - 월간《우리詩》(2011.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