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洪海里 연보

洪 海 里 2011. 5. 3. 04:51

 * 洪海里 연보

 

* 1941년 10월 8일 충북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472번지에서 아버지 남양 洪씨 性元과 어머니 경주 金씨 洪粉 사이에 4남 4녀 중 맏이로 태어남.

   (단, 호적에는 음력 1942년 8월 18일 생으로 되어 있음. 남양 洪씨 익산군파 36세손으로 본명은 峯義임. 필명인 海里는 바다가 없는 내륙에서 태어나

    넓은 바닷가의 정겨운 마을을 동경하는 마음에서 1960년부터 사용해 오고 있음.

   아버지는 고혈압으로 고생하다 1978년 57세로 별세하시고 어머니는 2001년 82세로 돌아가심. 8남매는 현재 서울과 수원 및 청주에서 살고 있음.)

*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청주시 모충동 405번지로 옮겨 중고교를 다님.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김소월의 시집『진달래꽃』을 만남.

* 1960년대 고려대 영문과에서  김종길 시인에게서 영시를 배우고 국문과 조지훈 시인의 시론과 현대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 1960년 영문과 동기로 만난 이무원 시인과 평생을 함께 지내오고 있음.

* 1964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인천에서 한 해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그리워하던 바다와 섬을 가까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함.

   그해 여름 인천신문에 게재된「갯벌」이란 짧은 시가 활자화된 나의 첫 작품임.

* 1965년 청주로 돌아가 세광고등학교에서 7년간 근무하다 충북 유일의 야구부 해체를 주동하고 1972년 청주상고로 옮겼다 교감과의 불화로 사표를 내고     1974년 서울 성신여중고로 자리를 옮김.

* 1969년 첫시집『投網圖』를 선명문화사에서 자비로 펴냄.

* 1970년 충주 池씨 明順과 결혼하고 그해 장남 錫珉 태어남.(석민은 1997년 정현정과 결혼하여 아들 형택과 딸 서현이 있음)

* 1972년 충북 최초의 동인지 《내륙문학》을 박재륜, 양채영 시인 등과 발기하여 4집까지 주재하다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모두 넘겨줌.

   현재 47집까지 간행됨.

   차남 韓錫 태어남. (한석은 2002년 정소현과 결혼하여 딸 예린과 아들 윤태가 있음)


* 1975년 두 번째 시집『花史記』를 시문학사에서 자비로 펴냄.
   이때부터 선인들의 시서화에 나타나 있는 난초에 관심을 가지고 난의 정체를 밝혀 보고자 문헌을 찾아 읽으면서 자생지를 답사하기 시작함.    난에 관한 글을 쓰면서 Walter Richter의 저서『ORCHIDS CARE』를 번역하여「서양란 가꾸기」라는 제목으로 격월간《분재수석》지에 1982년 56호부터   1984년 69호까지 연재함. (《분재수석》은 1983년 62호부터 제호를《자연미생활》로 개제함). 80년대 들면서 난바람이 전국적으로 몰아쳐 난 자생지가 황폐화 되는 현장을 보고 참을 수 없어 90년대 중반 온실에서 기르던 천여 분의 난을 친구의 난농장으로 넘겨주고 난에서 손을 뗌.
* 1976년 시집『武橋洞』이 무교동을 재개발 시작하던 날 태광문화사에서 나옴.
* 1977년 백우암의 소설과 함께 엮은 2인 작품집『우리들의 말』이 삼보문화사에서 나옴.
   같은 해 박운식, 양채영, 윤강원, 이무원, 최병학과 함께 6인시집『內陸集』을 간행함.* 1978년 봄에 몇 년 동안의 돈암동 전세살이를 끝내고 우이동 124-17번지에 터를 잡고 살면서 이생진, 임보, 채희문 시인 등을 만나게 됨.    주변머리가 없어 이사 한 번 하지 않고 뒷산의 인수, 백운, 만경과 놀며 북한산 양지바른 곳에 복숭아나무를 심어 꾸며 놓은 牛耳桃源,    우이동솔밭공원, 방학동 은행나무, 국립4·19민주묘지의 청악매를 즐기면서 살고 있음.* 1979년 김석규, 이영걸 시인과 3인시집『山上詠吟』을 내고 이듬해에『바다에 뜨는 해』, 그리고 1981년에『元旦記行』을 냄.
* 1980년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가 민성사에서 나옴.
* 1981년 딸 裕彬 태어남.* 1983년 직장을 동덕여고로 옮겨 18년을 근무하다 2000년 퇴직함.  『洪海里 詩選』이 탐구당에서 기획출판하고 있는 '탐구신서' 275번으로 출간되고 이듬해 재판이 나옴.   이 시선집에는 첫시집『投網圖』로부터 1980년에 나온『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에 들어 있는 작품 가운데 108편을 선별하여 묶음.* 1985년 '진단시' 동인으로 테마시 운동에 동참하다 1995년 그만두고 '우이동시인들'의 활동에 전념함.* 1986년 우이동에 살고 있던 이생진, 임보, 채희문, 신갑선 시인과 '우이동시인들'이란 동인을 결성함.* 1987년 봄에 동인지『우이동』제1집을 내고 자축하기 위해 그해 5월 덕성여대 입구에 있는 카페 파인웨이에서 시낭송회를 개최한 것이    우이시낭송회의 효시가 됨.    우이시낭송회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3시부터 도봉도서관에서 개최하여 2011년 5월 현재 275회에 이름.   우이동시인들의 동인지는 신갑선 시인이 6집까지 참여하다 떠난 후 7집부터는 4명이서  해마다 봄가을로  간행하여 1999년 25집에 이르게 됨.   동인지를 간행하는 한편 북한산 우이도원에 올라가 봄에는 삼각산시화제를, 가을에는 삼각산단풍시제를 개최해 오고 있음.* 1987년 시집『대추꽃 초록빛』을 동천사에서 펴냄.
* 1989년 시집『淸別』을 동천사에서 펴냄.

* 1992년 시집『은자의 북』을 작가정신에서 펴냄.
* 1994년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를 동천사에서 펴냄.
* 1996년 시집『투명한 슬픔』을 작가정신에서 펴냄.
* 1998년 난을 주제로 한 시집『愛蘭』을 '우이동시인들'이 만든 출판사 '우이동사람들'에서  펴냄.
* 1999년 우이시낭송회에 참여하는 시인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인지 간행을 잠정적으로 쉬고 월간『牛耳詩』를 발행하기 시작함.* 2003년 문학단체로는 처음으로 우이시회가 제13회 편운문학상을 수상함.* 2004년 7월 중국 칭다오대학의 초청으로 '한중현대시교류 세미나 및 시낭송회'를 칭다오대학에서 개최함.* 2006년 봄에 오랜 공백을 깨고 시집『봄, 벼락치다』가 도서출판 우리글에서 나옴.
* 같은 해 가을에 시집『푸른 느낌표!』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옴.
* 2007년 우이시낭송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들면서 명칭을 (사) 우리詩진흥회로 바꾸고 월간시지《牛耳詩》의 명칭도《우리詩》로 변경함.
* 2008년 봄에 시집『황금감옥』이 우리글에서 나옴.
*  같은 해 가을에 시선집비타민 詩』가 도서출판 우리글에서 나옴.   이 시선집에는 21세기 들어서 낸 세 권의 시집『봄, 벼락치다』『푸른 느낌표!』『황금감옥』에서 108편의 작품을 골라 실어 놓음.* 2010년 시집『비밀』이 우리글에서 나옴.* 2011년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초대와 2대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평의원으로 閑雲野鶴이 되어 구름처럼 학처럼 떠돌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