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그늘
洪 海 里
그가 단상에 앉아 있을 때
마치 한 권의 두꺼운 책처럼 보였다 한다
한평생 시만 덖고 닦다 보니
육신 한 장 한 장이 책으로 엮였는지도 모른다
한마디 말씀마다 고졸한 영혼의 사리여서
듣는 이들 모두가 귀먹었다 한다
자신이 쓴 시를 스스로 풀어내자
강당 안은 문자향文字香으로 그득했거니와
몸이 뿜어내는 서권기書券氣로 저녁까지 환했다 한다
평생을 시로 살았다면
말씀마다 꽃이 피고 새가 울어야 한다
그는 평생 모래바람 속을 묵묵히 걸어온 낙타였다
길고 허연 눈썹 위에는 수평선이 걸려 있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달빛처럼 흘렀다 한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자
먼지 한 알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 울 듯 요란했다
다시 입을 열어 말을 마쳤을 때
방안에는 오색영롱한 구름이 청중 사이로 번졌다고 한다
그의 시는 오래된 참나무 그늘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친 걸음을 쉬고 있었다
주변에는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한다.
- 월간『우리詩』(2012. 1월호)
- 시집『독종』(2012, 북인)
* 시인은 자체로 한 편의 시다. 물론 시처럼 사는 시인에 한한다. 시인이라는 말에는 시인이 아닌 것과 따로 자리하는 신비한 무엇이 있다. 이렇게 쓰고 나서 문자향 서권기의 근거를 짐작하게 된다. 얼마나 많이 읽고 교양을 쌓아야 문자에 향이 피어오르고 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단지 그 경지를 이야기하려다가 머뭇거리는 동작일 뿐이다.
향과 기운은 코를 벌름거리거나 시선의 집중으로 얻는 게 아니다. “평생을 시로 살았다”라는 말은 어떤가. 시를 간절히 품고 사는 사람이 스스로 시가 된다. 시인은 시로 사는 사람이다. 여기에 “참나무 그늘”보다 더 적절한 말을 놓을 수 없다. 그리하여 “말씀마다 꽃이 피고 새가 울어야” 진짜 시인이다. 오늘 만난 시가 그렇다. 그대로 시인이고, 시론이다.
- 금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