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선생님의 ‘비타민 詩’

洪 海 里 2011. 12. 22. 11:20

                                                    * 누리장나무 열매 

 

 한 번 만나 뵙지도 못했는데, 그냥 통하는 홍해리 선생님이 ‘비타민 詩’라는 시집을 냈다. 사실이지 우리나라 시단에 대단한 공헌을 하신 분 중 한 분이신 선생님이 요즘 시를 들여다보면, 아무래도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냥 단순한 나이로는 나보다 대여섯 살 위로 알고 있지만 ‘시인의 뜰 <洗蘭軒>’에 내건 사진이나 ‘수술실에 들어가며’를 보면 건강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다음은 시집 ‘비타민 詩’에 나온 ‘시인의 말’이다. 새천년 들어 드러낸 시집 ‘봄, 벼락치다’, ‘푸른 느낌표!’와/ ‘황금감옥’에서 내 시의 비타민 C를 뽑아/ 시선집 ‘비타민 C’를 엮는다.// ‘우리는 자연으로 가야 합니다./ 시는 우리 영혼의 비타민,/ 자연이 되기까지 한 알이면 충분합니다./ 비타민 詩를 복용합시다.’이다.

 

 한 때 난(蘭)에 미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셨다는 선생님! 가을 시편을 골라 결실의 기쁨을 노래하는 가을 열매와 같이 싣는다.

 

                                                          * 겨울딸기 열매

♧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정금나무 열매 

 

♧ 가을 서정

 

    1. 가을詩

 

여름내 말 한 마디 제대로 고르지 못해

비루먹은 망아지 한 마리 끌고 올라와

오늘은 잘 닦은 침묵의 칼로 목을 치니

온 山이 피로 물들어 빨갛게 단풍 들다.

  

     2. 상강(霜降)

 

가을걷이 기다리는 가득한 들판

시인들은 가슴속이 텅텅 비어서

서리 맞은 가을 거지 시늉을 내네

천지에 가득한 詩를 찾아가는 길

가도 가도 머언 천리 치는 서릿발

詩 못 쓰는 가을밤 바람만 차네.

  

      3. 칼

 

눈썹 한 올 하늘에 떠서 푸르게 빛나고 있다!


                                                * 가막살나무 열매 

 

♧ 가을 엽서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달빛을 맞은

지상의 벌레들도

밤을 도와 은실을 잣고 있습니다


별빛도 올올이 내려

풀잎에 눈을 씻고

이슬 속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빛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요 속에 몸을 뉩니다


오늘도

묵언 수행 중이오니

답신 주지 마십시오.

 

                                                         * 작살나무 열매 

 

♧ 가을 들녘에 서면


다들 돌아간 자리

어머니 홀로 누워 계시네

줄줄이 여덟 자식 키워 보내고

다 꺼내 먹은 김칫독처럼

다 퍼내 먹은 쌀뒤주처럼

한 해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허허한 어머니의 生이 누워 계시네

알곡 하나하나 다 거두어 간

꾸불꾸불한 논길을 따라

겨울바람 매섭게 몰려오는

기러기 하늘

어둠만 어머니 가슴으로 내려앉고

멀리 보이는 길에는 막차도 끊겼는가

낮은 처마 밑 흐릿한 불빛

맛있는 한 끼의 밥상을 위하여

빈 몸 하나 허허로이 누워 계시네.

 

                                                       * 배풍등 열매

♧ 한가을 지고 나면


기적도 울리지 않고 열차가 들어온다


한갓되이 꽃들이 철길 따라 피어 있다


굴을 지날 때 승객들은 잠깐 숨이 멎는다


역사에는 개망초처럼 소문이 무성하다


기약 없이 열차는 다음 역을 향해 떠난다


꽃잎 지는 역은 장 제자리에 있다

 

                                                       * 알꽈리 열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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