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장醬을 읽다

洪 海 里 2019. 1. 3. 17:33


을 읽다

洪 海 里

 


그녀는 온몸이 자궁이다
정월에 잉태한 자식 소금물 양수에 품고
장독대 한가운데 자릴 잡으면
늘 그 자리 그대로일 뿐---,
볕 좋은 한낮 해를 만나 사랑을 익히고
삶의 갈피마다 반짝이는 기쁨을 위해
청솔 홍옥의 금빛 관을 두른 채
정성 다해 몸 관리를 하면
인내의 고통이 있어 기쁨은 눈처럼 빛나고
순결한 어둠 속에서 누리는 임부의 권리.

몸속에 불을 질러 잡념을 몰아 내고
맵고도 단맛을 진하게 내도록
참숯과 고추, 대추를 넣고 참깨도 띄워
자연의 흐름을 오래오래 독파하느니
새물새물 달려드는 오월이 삼삼한 맛이나
유월이년의 뱃구레 같은 달달한 맛으로
이미 저만치 사라진 슬픔과
가까이 자리잡은 고독을 양념하여
오글보글 끓여 내면
투박한 기명器皿에 담아도
제 맛을 제대로 내는
이여, 너를 읽는다

네 몸을 읽는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시의 실물을 정확하게 언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부터 시의 실물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의 실물은 시인의 진정성과 맞닿아 있는데, 언어와 의식이 상호 혼융되어 절대의 지점으로 이입하게 될 때, 또는 언어가 외적 대상을 순결한 상태로 고양시킬 때, 우리는 시의 실물과 조우하게 된다. 따라서 시(또는 시의 실물)란 예민한 감각능력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할 때, 시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외적 대상의 가능성을 몽상 속에서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실 시가 씌어지는 지점은 감각이 언어로 치환되는 황홀의 순간인데, 바로 그때 오감으로 세계를 느꼈던 감각은 마비되고 문자들이 살아 움직여 말들의 향연을 벌인다. 감각이 문자로 읽힌다. 대상이 살아 움직여 미지의 기호들을 세상에 흩뿌린다. 시적 언어가 발화되는 순간은 외적 대상들과의 의식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홍해리 시인의 「장을 읽다」는 섬세한 손길로 시가 씌어지는 지점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읽는다는 것은 대상을 살아 숨쉬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그 대상을 사랑과 연민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인데, 시인은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서 물질에 정령을 불어넣는다.

  물적 대상을 공손하게 모시는 시인. 시의 상상력은 물적 타자를 대화적 관계 속으로 수렴시켜 사물의 밀도와 온기를 읽어 언어로 치환시킨다. ‘읽음’은 사물 속에 내재한 의미를 읽는 것인데, 그것은 오감의 눈으로 보는 행위가 선행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봄seeing은 모든 의식이 집중된 전일全一한 상태인데, 홍해리 시인은 그 보는 행위를 통해 자연의 순리를 정관해낸다.

  사실 장을 읽는 행위는 장이 익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행위인데, 시인은 그 과정을 하나의 제의적 모습으로 승화시켜 우리네 먹거리인 장을 인간학적 모습으로 변환시킨다. 앨런 와츠가 『물질과 생명』에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적 사태를 에너지의 전환 형태로 이해했던 것처럼, 더 나아가 생명과 생명의 흔적들을 하나의 제의적 의미로 고양시켰던 것처럼, 홍해리 시인도 장을 읽는 행위 속에 자연의 순리적 흐름을 내파시킨다.

  이때 인간은 인내와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다가 문득 고독의 심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저 오묘한 생의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 우리네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장醬. 장醬은 장場으로 변하여 축제의 장을 풍요롭게 펼친다. 하여 읽는 행위는 향유하는 행위로 질적 비약하는 동시에, 우리네 삶 깊숙이 스며들어 생을 지속시키는 뼈와 살이 된다.

  이처럼 흥겹고 살맛나는 장의 제의가 어디 있는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읽음의 의미론적 행위인가. 홍해리 시인의 「장을 읽다」에 형상화된 의미론적 읽음은 세계-내-내 존재물들을 살뜰하게 모시는 살가운 시선이다. 하여 그의 시선은 물활론적 세계에 맞닿아 있다. 살아 움직이는 물질적 제의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장의 저 화려한 변신. 생의 고뇌와 흥겨운 축제.

   _ 김석준(문학평론가)



   * 홍해리 시인의「장을 읽다」는 섬세한 손길로 시가 씌어지는 지점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읽는다는 것은 대상을 살아 숨쉬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그 대상을 사랑과 연민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인데, 시인은 물질직 상상력을 통해서 물질에 정령을 불어 넣는다.

이토록 흥겹고 살맛나는 장의 제의가 어디에 있는가.이처럼 아름다움의 의미론적

행위가 또 어디에 있는가. 홍해리 시인의「장을 읽다」에 형상화된 의미론적 읽음은 세계-내-내

존재물들 살뜰하게 모시는 살가운 시선이다.

   - 김길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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