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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행致梅行」시 읽기 / 함미숙

洪 海 里 2020. 11. 17. 01:23

비닐장갑

-치매행致梅行 · 191

 

洪 海 里

 

 

자식 낳아 기르면서

애기똥풀 진액 같은 똥 한 번 묻히지 않은

부모라면 아비 어미 아니듯,

병든 아내 똥 한 번 안 만져보고

남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식들은 제 부모가 병들어도

왜 뒷수발을 들지 못하는가

어찌 아니 하는 것인가

비닐 장갑을 끼고 버무린 김치 깍두기

제대로 맛이 나겠는가

살이 닿아 무쳐진 김치가 제 맛이지

오늘도 집사람 기저귀 갈아주고

뒤처리를 하다보면

내손은 이미 황금손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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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

-치매행 · 210

 

 

미안하다

아내여,

 

사랑해서,

 

죽고 싶다,

 

네가

차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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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다

-치매행 · 181

 

 

하루 종일 홀로 집을 지키다

주인이 돌아오자

꼬리 치며 기어오르는 강아지처럼

저녁에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내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 대며 키스를 퍼붓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젊은 연인이기나 한 듯

남녘으로 부터 들려오는 꽃소식에

요 며칠 아내의 얼굴에도 꽃이 핍니다

얼마 전만 해도

귀가 차량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안 가!", "싫어!" 하며

떼쓰고 억지를 부렸는데

봄바람이 좋긴 좋습니다

아내의 동토에도 이대로 봄이 와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나라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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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시인님의 시집 『매화에 이르는 길』을 읽었습니다.

시를 읽다가 울컥, 한숨처럼 쏟아지는 눈물이 시인이 혼자 겪었을 고통 때문이었는지, 사랑을 잃어버린 내 처지의 자조적인 울음이 섞였는지 알 수 없는 울음이었습니다. 어제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홍해리시인 아내분의 부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식사도 못하고, 인사만 드리고 나왔습니다만, 힘들었던 한 주의 피로와 함께, 기진했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시인님과의 우연한 인연이 10여 년이 된 것 같아요. 시낭송회에 처음 초대를 해 주신 분이기도 하고, 난초를 좋아하셔서 난에 관한 시를 쓰셨는데, 그 시가 좋아서 한참 읽었었지요. 지금와 생각해 보니 삶조차 난처럼 사는 분이신 거 같습니다. 아내의 차가움을 먼저 느끼지 않겠다 하는 아내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시의 한 구절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출근길에 들었던 FM의 멘트도 떠오릅니다. 아내가 홀로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어느 작가의 멘트를 듣고, 삶을 따뜻하게 이끄는 힘은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아직도 철부지 같은 사랑에 목메어 있었다는 사실도 인식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