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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 홍해리

洪 海 里 2024. 3. 29. 06:5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18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3. 1. 18. 

 

 

오늘 아침도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빛나는 이야기"란 부제를 단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읽기를 이어간다. 오늘 아침은 제7장 "파 뿌리의 지옥, 파 뿌리의 천국"을 읽고 여러 가지 사유를 해본다. 끝까지 이기적일 것 같은 사람도 타인을 위해 파뿌리를 하나 정도는 나눠준다. 그 정도의 양심은 꺼지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

파뿌리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온다. 우리가 행하는 보잘것없는 선행 한 가지도 하느님의 축복이 된다는 말이다. 옛날에 아주 인색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살아생전에 한 번도 선행이라곤 해본 적이 없어서 죽은 후에 지옥에 던져졌다. 이 노파의 수호천사는 하느님께 말씀드릴 좋은 일 한 가지를 가까스로 찾아내어 “저 노파는 밭에서 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에게 준 일이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하느님은 “그럼 네가 그 파를 가져다 가 불바다 속에 있는 노파에게 내밀어 그걸 붙잡고 나오도록 해라!”하고 대답하셨다. 천사는 노파한테 달려가 파를 내려주면서 “할머니, 이 파를 붙잡고 올라오세요!” 라고 말하고 조심스럽게 그 파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노파가 거의 다 끌어올려 졌을 무렵, 불바다 속에 있던 다른 죄인들이 자기네들도 노파와 함께 나가려고 모두가 그 파뿌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노파는 다른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면서 “나를 끌어 올려 주는 것이지 너희들이 아니야, 이건 내 파란 말이야!”하고 말하기가 무섭게 파는 뚝 끊어지고 노파는 다시 불바다 속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수호천사는 구슬피 울면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소설에서 막내 아들 알료샤를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얼료사는 수사가 되려 했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신부가 죽고 그 몸이 썩자 창녀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 놓는다. '내가 수사가 되기는 틀렸다. 고결한 성인도 저렇게 되는데, 나는 이미 죄인이나 다 글러 먹었다.' 그때 창녀가 알료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파 뿌리 이야기이다. 그날 알료사는 꿈에서 죽은 신부를 만난다. 천국에서 신부가 말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파뿌리들이야." 인간은 다 구제불능으로 이기적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각자 붙들 파 뿌리 하나씩은 있었던 거다.

스승 이어령이 해주는 말이다. 이어서 스승은 인간으로 풍부하게 누리고 살아가려면 다음의 세 가지 영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자연계, 법계, 기호계의 구분처럼, 어떤 한 대상에 대해 사유할 때 인지와 행위와 판단의 영역으로 기준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참인가, 거짓인가'라는 생각을 다루는 것은 인지론이고, '착한가 악한가'라는 행위를 다루는 것은 행위론이다.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들어가, 아름다움과 추함을 다루는 것은 제 각각 미를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표현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그리고 어떤 한 가지 대상을 사고할 때, 우리는 인지와 행위와 판단의 영역으로 기준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칸트가 그 세 가지 영역을 질서 있게 정리했다. 진실(眞)은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루고, 선악(善惡)의 윤리 문제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다루고, 아름다움(美)에 관한 것은 <<판단이성비판>>에서 다뤘다. 서양은 세 가지 다른 기준으로 진선미를 구분하는데, 동아시아는 좀 두루뭉실하다. 진이 선이고, 선이 미이고, 미가 선인 걸로 착각을 한다.

스승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변덕스럽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보편성이 없다. 사실 모든 생물이 다 그렇다. 그러나 생명이 아닌 것은 안 그렇다. 물은 0도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는다. 과학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생명이 없는 정물이어야 한다. 과학은 인간을 표준으로 하지 않는다. 과학은 우주적인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특히 수학이 그렇다. 수학은 인간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래서 구구단은 무조건 외울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예술은 그렇지 않다.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시각 경험으로 미술이, 청각 경험으로 음악이, 언어 경험으로 문학이 나온 거다. 스승의 말에 따르면, 인문 운동가는 예측 불허의 확장성으로 덮여 있던 이불을 들추고, 그 안의 낯선 세계를 , 세계의 민 낯을 현미경처럼 비추는 일을 하여 한다.

어제는 오전 내내, 온갖 검사를 받았다. 뭐가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주치의가 하라는 대로 했다. 매 검사실마다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는데,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전날 MBC <스트레이트>라는 프로에서 방영되었다는 것이 눈을 어지럽혔다. 그래 오늘의 시를 한 편 공유하고, 그때 들었던 생각들을 인문 운동가의 눈으로 이불을 들추고 싶다. 왜 오늘아침 사진은 파일까? 오늘 아침 시처럼, "비밀"이다.

글이 길어진다.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불통

홍 해 리

이번 시집 제목이 무엇입니까?
'<비밀>'입니다.

시집 제목이 무엇이냐구요?
'비밀'이라고요.

제목이 뭐냐구?
'비밀'이라구.

젠장맞을, 제목이 뭐냐니까?
나 원 참 '비밀'이라니까.

 

* https://pakhanpyo.tistory.com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