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봉을 보며
洪 海 里
봄이 오면 풀잎이 돋아나듯이
느글대는 피를 어쩔 수 없다
문득 차를 타고
4·19탑 근처를 서성거리다
인수봉을 올려다보면
그저 외연한 바위의 높이
가슴속 숨어 있는 부끄러움이
바람따라 똑똑히 되살아난다
백운대를 감고 도는 흰 구름장
벼랑에 버티고 선 작은 소나무
어둔 밤이 와도 움쩍 않고
서늘한 바람소리로
가슴속 검은 피를 느글대게 한다
부끄러운 나의 피를 돌게 한다
저 바위 아래 그늘 속
이름 모를 풀꽃도
때가 되면 스스로 피어나는데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나의 피여.
- 시집 『우리들의 말』(1977, 삼보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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