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인디언 대학살

洪 海 里 2005. 12. 30. 05:19
[책갈피 속의 오늘]
1890년 美운디드니의 ‘전투’
[동아일보 2005-12-29]

“우리는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들소라도 되는 것처럼 무조건 쏘아 댔다. 미군들은 비열한 자들이었다. 아녀자에게 총을 쏘아 대다니! 인디언 전사라면 백인 어린이들에게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운디드니 전투에서 살아남은 한 인디언 여성)
1890년 ‘사슴이 뿔을 가는 달’(12월)에 인디언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수우족의 대추장 ‘앉은 소’가 백인에게 암살됐다.
지도자를 잃은 수우족은 다른 추장 ‘붉은 구름’이 있는 지역으로 옮겨가다가 미 제7기병대와 만나 운디드니 샛강 근처 기병대 기지로 연행됐다.
운명의 29일.
미군은 무장 해제를 명령했지만 젊은 인디언 전사 ‘검은 코요테’가 총을 내려놓지 않았다. 미군 병사들이 달려들어 총을 붙잡는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언덕 위의 미군 기관총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350명의 인디언 가운데 150명이 현장에서 사살됐다. 죽은 사람 가운데 절반은 부녀자와 어린이였다.
부상자는 근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성탄절 나흘 후 예배당에는 ‘땅에는 평화, 사람에게 자비를’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서부 개척에 나선 것은 19세기 중반부터. 1848년 멕시코전쟁에서 승리한 덕에 서부에 광활한 영토를 얻게 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1860년부터 1890년까지 30년 동안 미국 인구는 3100만 명에서 6200만 명으로 늘었다. 새로운 삶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유럽 이민자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미국 동부 해안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살고 있던 인디언을 중부 평원으로, 다시 서부로 밀어냈다.
‘앉은 소’는 “백인이란 종족은 둑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봄 홍수와 같다”고 말했다.
백인들의 서부 개척사는 인디언의 몰락사였다.
역사적으로 운디드니 전투는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과 원주민인 인디언 사이에 벌어진 ‘인디언전쟁’의 마지막 전투로 꼽힌다.
그것은 인디언들에게 자유의 종말을 의미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좁디좁은 보호지역으로 유폐됐다. 그리고 그들의 꿈도 함께 갇혔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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