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파스테르나크 노벨상 수상

洪 海 里 2005. 12. 30. 06:18
03/10/22

[책갈피 속의 오늘]

 

1958년 파스테르나크 노벨상 수상

‘창에 성에가 껴서 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없을 때/절망에서 오는 슬픔은 차라리 죽음보다 더하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혁명의 격랑(激浪)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과 사랑을 껴안아야 했던 러시아 인텔리의 초상이자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다.

1934년 소비에트 작가동맹이 결성되고 창작에서도 사회주의 원칙이 선언되자 긴 침묵에 들어갔던 파스테르나크. 그러나 그는 ‘라라’의 실존인물인 올가 이빈스카야를 만나면서 ‘닥터 지바고’의 집필에 몰두하게 되는데, 작품이 먼저 해외에 소개되면서 냉전의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1958년 10월 23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의 노벨상 수상은 문단을 들끓게 했다. 그것은 소비에트의 예술과 문학에 대한 서방세계의 ‘테러’였다. 작가동맹은 그를 제명했고, 그를 국외로 추방하라는 탄핵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수상을 거부하게 된다. 그리고 ‘유명해진다는 것은 추한 것이다’라는 시에 ‘무명(無明)에 잠기거나/무명에 자기의 발걸음을 숨겨야 한다’고 회한을 옮겼다.

‘스탈린의 망령’은 파스테르나크의 예술뿐 아니라 사랑에까지 독수(毒手)를 뻗쳤다. 그는 1960년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올가의 안부를 걱정했으나 정작 그녀는 ‘당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의 동향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소설 속의 ‘라라’가 아니었다.

올가는 그가 죽은 뒤 시베리아에 유폐되자 니키타 흐루시초프에게 석방을 탄원하며 이렇게 썼다. “나는 파스테르나크를 침묵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외국인과 만나지 못하게 하라는 당국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습니다.”

시(詩)는 ‘하나의 나뭇잎을 얼어붙게 하는 밤, 두 마리 휘파람새의 결투’라고 정의했던 파스테르나크. 그 스산하고 처연한 풍경은 그의 삶과 사랑에 지워지지 않는 배경으로 남았다.

그는 시인의 운명을 타고났으나 ‘시대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