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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달과 6펜스

洪 海 里 2005. 12. 30. 07:13
03/12/15

[책갈피 속의 오늘]

 

달과 6펜스…1965년 서머싯 몸 사망

런던의 주식중개인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증발했다.

가족을 내팽개친 채 파리로 날아간 그는 뜻밖에도 화가로 변신해 있었다. 몸을 돌보지 않아 빈사 상태였다.

일찌감치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화가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를 집으로 데려왔다. 스트릭랜드는 곧 회복되었지만 스트로브의 아내 블랑쉬는 어느새 그의 야성과 마성의 포로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블랑쉬는 그에게서 버림을 받고 음독자살을 하고 만다. 졸지에 아내를 잃게 된 스트로브. 그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우연히 스트릭랜드가 그린 여자의 누드 그림을 발견했다. 모델은 바로 아내였다.

불같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 스트로브는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팔레트를 쳐들었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펼쳐진 위대한 예술에 압도된 채 힘없이 팔레트를 떨구고 만다.

윌리엄 서머싯 몸의 장편소설 ‘달과 6펜스.’

가족이든 친구든 친구의 아내이든 자신의 천재성의 불길에 아낌없이 던져버리는, 예술에 사로잡힌 한 영혼의 악마적 개성을 그렸다. 작품은 몸에게 작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줬지만 화가 폴 고갱의 삶을 왜곡했다고 해서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몸은 193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고료를 받는 작가였다. 그러나 그만큼 부당한 멸시와 혹평을 감내해야 했던 작가도 드물다. 몸 자신도 “나는 이류작가의 첫 대열에 서 있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몸은 인간의 모순(矛盾) 속에 진정한 조화가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정상적인 것의 실재(實在)는 그 자체가 비정상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그는 특출한 인물보다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참으로 기이하고 불가해(不可解)한 세계였던 것이다.

시니컬한 시선으로 ‘인간의 굴레’를 꿰뚫어봤던 몸.

그는 침대에 누워 죽어 가고 있을 때 절친한 친구를 불렀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 주도록 부탁했다.

그는 ‘예술의 최후(最後)’ 이후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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