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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도晩才島(전남 신안군 흑산면 남쪽에 있는 섬)

洪 海 里 2006. 9. 19. 05:41
전남 신안 만재도



만경창파 한가운데 떠있는 청정의 섬 만재도. 숲과 바위, 깎아지른 벼랑이 어우러진 섬의 모습은 첫 인상에서부터 혼을 빼앗는다.

마을은 섬의 한가운데 나지막하게 자리잡았고 그 앞은 몽돌해변이다. 조막만한 자갈로 이뤄진 해변이 초승달 모양으로 크게 휘어졌다. ‘차르륵~ 차르륵~’ 파도가 들고 날 때마다 자갈을 씻기는 소리가 가슴을 쓸어낸다. 모래사장이 없는 이 섬에는 몽돌해변이 모두 3곳 있다. 마을 앞 가장 큰 곳이 ‘앞짝지’, 앞산 자락에 있는 것이 ‘건너짝지’, 마을 남쪽 벼랑 아래 있는 것이 ‘달피미짝지’로 불린다.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어린 수호와 은영이 표류돼 온 곳이 달피미짝지이고 은영이 자갈로 작은 탑을 쌓고 소망을 빌고, 수호가 은영에게 주려고 조개껍질을 줍던 곳이 앞짝지다.

마을의 집들은 하나같이 차곡차곡 돌을 쌓아 지붕까지 높게 담을 둘렀다. 멀리서 보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요새같아 보인다. 섬사람에게 이 돌담은 태풍이란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성벽이다.

작년 9월 문닫은 잡초 무성한 폐교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는 비탈진 밭들이 이어진다. 척박한 땅이지만 고구마나 감자, 시호라는 약초를 재배하는 곳이다. 밭 두렁에는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져 봄햇살을 맞고 있다.

해변에서 채 10분도 되지 않아 오른 능선. 사방이 뻥 뚫리면서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마을 뒤편으로는 아찔한 벼랑 밑으로 꼭 코끼리를 닮은 내마, 외마 두개의 섬이 나란히 붙어 서있다.


등대 바로 아래는 주상절리로 이뤄진 깍아지른 해벽이다(왼쪽). 마을 앞 해변에는 드라마에서 수호와 은영이 타고 온 목선이 아직도 누워있다(오른쪽).

능선에 오른 김에 등대가 있는 이 섬에서 가장 높다는 큰산(176m)으로 걸음을 옮겼다. 억새 가득한 능선에는 마치 곱게 빗어 넘긴 가르마 같은 좁은 오솔길이 나 있다.

걸은 지 30여분 제법 목줄기에 땀이 적셔질 때 섬의 정상인 등대에 다다랐다. 크지않은 등대는 수풀에 가려져 더욱 왜소해 보인다. 등대 바로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그런데 절벽이 예사 벼랑이 아니다. 마치 전봇대 수백, 수천개를 차곡차곡 겹쳐놓은 듯한, 주상절리의 지형이다. 길쭉한 돌기둥이 잇달아 붙어있는 귀한 풍경이다.

등대 옆은 동백과 후박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오래된 나이를 보여주는 굽어진 아름드리 둥치가 예사롭지 않다. 땔감이 부족한 섬이었지만 그 동안 주민들이 절대 손을 대지 않았던, 신령스럽게 모시는 할아버지 당숲이다. 당숲은 마을의 남쪽, 발전소 바로 아래에 하나 더 있다. 등대 옆 할아버지 당숲과 짝을 이룬 할머니 당숲이다. 오래 전 섬사람들은 이 할머니 당숲에서 당제를 지내왔다.

할머니 당숲 안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동백이 붉은 빛을 토해내고 하늘을 가린 나뭇잎 사이로 봄볕이 부서져 내린다. 초록 숲의 바닥은 푸른 보석을 머금은 풀밭이다. 주민들이 ‘비옷’이라 부르는, 난초를 닮은 풀이 사파이어빛의 보석 같은 열매를 달고 축축 늘어져있다.

할머니 당숲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숲 바로 아래에 섬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숲이 바로 만재도의 생명원인 것이다.

섬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에 반해 아예 어선을 한 척 빌려 해상투어에 나섰다. 배가 선착장을 벗어나 처음 만난 해안 절경은 서들개.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해벽이 압도해온다. 큰산 밑 등대 아래 주상절리가 수놓은 벼랑에 이르러서는 입이 절로 벌어진다. 내마와 함께 다정히 떠있는 외마섬 한쪽에는 가마우지가 둥지를 틀고 제 배설물로 하얀 벽화를 그려놓았다. 웅틈개 해안절벽은 마치 동굴의 종유석이 흘러내린 듯한 모양으로 색다르다. 앞산자락의 녹도를 스쳐 지나가면 주장절리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모양도 다양해진다. 주상절리 기둥이 마치 초가지붕을 이고있는 듯하다는 ‘지붕바위’를 지나면 뻘건 용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진 용바위가 나타나고, 그 옆 거북바위를 지나면 파도에 구멍 뚫린 ‘남대문바위’가 이어지며 해상 유람의 절정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섬 / 이생진

만재도에 가고 싶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오지 말라고 했다
아니 만재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가
아예 만재도는 없다고 했다가
만재도는 당신의 꿈속에 있을 뿐이라고 했다
만재도에 갔다 온 사람도 쉬쉬했다
만재도를 숨기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만재도에 갔다 왔으면서 만재도는 없다고 했다
섬은 동경, 섬은 그리움이다.

공중에 떠돌던 아련함이 굳어져 물 위에 바위가 되고 섬이 됐다. 그 섬들 중 하나, 먼 바다 위에 혼자 외로이 떠서 있는 듯 없는 듯 스스로를 감추고 있던 작고 예쁜 섬이 있다. 뭍에서 뱃길로 5시간을 내처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멀고 아득한 섬. 섬을 노래하는 이생진 시인이 10년을 별러서 찾았다는 만재도가 그 곳이다.
KTX가 달리고 새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된 지금 쾌속선으로 5시간의 뱃길은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긴 여정일 것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거리로는 울릉도나 가거도가 뭍과 더 떨어져 있지만 시간으로는 만재도가 가장 멀다. 뱃길의 종점에 그 섬이 있다.

지난 초여름 신안군 흑산면의 홍도를 찾았을 때 일이다. ‘홍도 마케팅 팀장’이라는 명함을 건넨 연세 지긋한 홍도 이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역시 홍도만한 섬이 없습니다”라고 추켜세우자 ‘마케팅 팀장’의 뜻밖의 말씀. “남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만재도도 홍도 이상으로 아름다운 섬입니다.”

홍도에 견줄 아름다움을 품었으면서도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비의 섬. 그때부터 만재도란 이름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곤 그 섬에 가기를 여태 별렀고 또 머뭇거렸다. 솔직히 5시간이 넘는 뱃길, 파도가 성할 때는 갓나서 먹은 어머니의 젖까지 토해내게 한다는 배멀미의 고행이 두렵기도 했다.
핑계를 더한다면 이틀에 한번 짝수날에만 배가 뜨는 탓에 섬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막상 목포항까지 갔어도 당일 주의보가 발령되면 계획은 수포가 되고, 행여 섬에 들어갔어도 파도를 잘못 만나면 나흘이고 엿새고 나오질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겨울연가’의 윤석호 감독이 사계절 시리즈의 완성인 ‘봄의 왈츠’에 만재도의 풍경을 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섬을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 없을 것 같아 서둘러 목포행 열차에 올랐다. 다행히 배는 순조롭게 닻을 올렸다.

바다는 봄안개로 자욱했다. 땅과 물은 아직 차가운데 봄볕은 따뜻해서 이렇게 두꺼운 안개 장막이 펼쳐진다. 안개 낀 봄바다는 조용했고 울렁임도 견딜만했다. 구름 같은 나른한 풍경 속으로 배는 스르르 빠져들었다. 흑산도를 지나 하태도, 가거도를 찍고, 멀미 보다 지루함이 갑갑해 더 견디기 힘들어질 때 마침내 망망대해 한가운데 덜렁 솟은 외로운 섬 만재도가 나타났다.
여객선을 댈 수 없어 바다 위에서 목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작은 섬. 이제껏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꺼려했던 은둔의 섬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졌다. 원시의 자연과 때묻지 않은 삶을 그대로 품고 있는 땅. 길게 누운 섬자락엔 연한 푸르름이 충만했고, 섬 한복판에 다소곳이 낮게 들어선 마을은 아늑했다. 그토록 벼르고 별렀던 ‘봄의 섬’ 만재도가 내게 벅차게 다가왔다.

하늘에 있는 섬 / 이생진

이 비경을 나만 보여주기 위해
어젯밤 조물주가 새로 만든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어젯밤에 태어났다
손톱 사이에도 때가 끼지 않았다
비공개리에 공개된 섬
만재도
배에서 내려 찾아가면 없고
없어서 다시 배에 올라타면 나타나던 섬
십 년을 그짓하다 오늘에야 올라간 섬
만재도
그 섬을 놓치지 않기 위해
큰산 물생산 장바위산
나도 검은 염소가 되어
염소들 틈에 끼어 따라다녔다
그들은 내가 염소인 줄 알고 마음놓고 다녔다
이 섬은 내가 염소이길 바랬다

만재도 가는 길
목포에서 만재도로 가는 배는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짝수날 오전 8시에 출항한다. 서울에서 갈 경우 목포에서 하룻밤 머물러야 배를 탈 수 있다.
목포에서 만재도까지는 5시간 걸리고, 만재도에서 목포로 나오는 배는 오후 1시에 출발해 4시간 걸린다. 만재도로 갈 때는 가거도를 거치지만 나올 때는 바로 하태도로 향하기 때문에 1시간이 줄어든다. 요금은 편도 4만 3,050원. 남해고속 (061)244-9915, 6
여름에는 주말에 전남 진도에서 뜨는 20인승의 낚시관광선을 이용할 수 있다. 시간은 2시간 걸리고 요금은 왕복 7만원. 진도 다도해낚시 (061)542-7117

만재도는 관광지로 개발된 섬이 아니다 보니 쾌적하게 머물 숙박시설이나 식당 등이 준비돼있지 않다. 대신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박을 이용할 수 있다. 민박을 원할 경우 최규환 이장(061-275-8654)이나 내연발전소(061-275-8118)를 통해 소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