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시인 2

가을 들녘

가을 들녘 洪 海 里  다 벗으니 찬란하구나다 버리니 가득하구나 그 사이 길이 있어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길이 있어그 길로 누가 가고 있다 다 벗고다 버린홀로 가는 이가 있다 들녘은혼자서 가득히 빛나는구나. - '우이동 시인들' 제19집 『저 혼자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1996, 작가정신, 값 3,500원)* 들녘 : 김성중 시인 촬영.(2024. 11. 07)

<시> 벼꽃 이는 것을 보며

벼꽃 이는 것을 보며 洪 海 里  내 몸속에는 몇 만 평의 무논이 펼쳐져 있는 것일까몇 천만 포기의 벼가 소리 소문도 없이 짝짓기를 즐겼을까하늘은 저 무량한 세상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흐뭇했으랴바람은 또 포기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박수치고 축복했으리라물은 물대로 바닥에서 포기마다 뼈를 세워 주려고 무진무진 애를 썼으리라 하면,이 몸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푸른 하늘과맑은 물과 바람과 흙,뜨거운 햇볕과아버지의 짜디짠 여든여덟 말의 땀과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부뚜막에 떠 놓은 수천수만 대접의 정성이내 몸속에 한도 끝도 없이 흐르고 있으니 이 한 몸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백중百中 전날 괴산 아성阿成마을에 가서벼꽃 이는 것을 바라보다흘러가는 흰 구름을 하염없이 핥고 있었네. - 시집『독종』(2012, 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