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외설과 예술 사이

洪 海 里 2006. 11. 2. 07:07

[책갈피 속의 오늘]

 

1960년 소설 ‘채털리부인의 사랑’ 승소

[동아일보 2006-11-02]    

1960년 11월 2일 영국의 펭귄출판사가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소송에서 승소했다. 펭귄출판사가 소설 속 성애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내기로 결정하자 외설물 검열관이 출판사를 고소했던 것. 소설의 최종본이 완성된 것은 1928년 1월이었지만, 원작 그대로 출판할 수 있게 된 것은 32년이 지나서였다.

영국 작가 D H 로렌스가 이 소설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것은 1928년 7월이다. 국내에는 이렇게 알려졌지만 원제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이며 원제를 그대로 살린 번역서도 최근에 나왔다.

소설은 성불구자 남편이 있는 주인공 코니가 사냥터지기 멜로즈와 성행위를 동반한 사랑을 나누고 결국 남편과의 이혼을 감행한다는 내용. 대담한 성행위 장면이 상당 부분을 차지해서 출판사들은 성 묘사와 비속어를 삭제하면 책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작가는 삭제 요구를 거절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자비로 출판을 감행한다. 영어권 조판공들이 “도덕적으로 더럽다”며 인쇄 작업을 거부해 영어를 모르는 이탈리아 조판공에게 부탁해야 했던 것. 이탈리아 조판공은 소설이 섹스에 관한 얘기라는 설명을 듣고 “그런 건 매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영국과 미국에서 판금조치를 당했지만 불법해적판이 쏟아져 나와 비싼 값으로 팔렸다. 단속을 나온 경관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고 무마했다는 서점 주인도 있었다. 로렌스 사후 두 해 뒤인 1932년 영국과 미국에서 일부 삭제판이 나왔지만 성애 묘사가 들어 있는 해적판 유통은 계속됐다.

펭귄출판사의 소송은 유명하다. 시인, 비평가, 영문학자, 성직자 등 35명에 이르는 증인이 이 소설의 외설 시비를 가리기 위해 법정에 섰다. 증인들은 소설을 집으로 갖고 가지도 못했고 재판관이 정한 장소에서, 각자 떨어져서 읽어야 했다. 검사는 30여 쪽에 이르는 성애 묘사가 꼭 필요한 장면인지 물었고, 증언대에 섰던 사람들은 모두 “지나친 감은 좀 있지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 소설에 담긴 주제 의식이 부각된 것은 그때부터다. 음란호색물로만 알려졌던 이 소설이 실은 정신주의적 삶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산업사회의 허위의식을 꼬집었다는 것, 남녀 간의 육체적인 묘사가 자연주의 생명주의의 구현을 상징한다는 것 등 텍스트의 예술성을 탐색하는 다양한 연구 성과가 나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