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988년 작가 놀런 英최고문학상 수상
1988년 1월 19일 아일랜드 작가 크리스토퍼 놀런은 자전소설 ‘시계의 눈 밑에서(Under the Eye of Clock)’로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휘트브레드 북 어워드’를 받았다. 그때 놀런은 21세였다.
태어날 때 산소 부족으로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그는 평생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손을 사용할 수도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놀런의 몸은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고, 팔과 다리는 제각기 움직였다. 그는 눈을 깜박이거나 고개를 끄덕여 간신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놀런은 길이 보이지 않는 것에 절망해 풀썩 주저앉지 않았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버나뎃은 어린 아들에게 늘 책을 읽어 줬다. 워드프로세서 작동법을 익혀 생각을 글로 표현하도록 격려했다. 아들이 매일 조금씩 이해해 나가리라 믿었기 때문에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놀런은 이마 가운데 뿔처럼 단 막대기로 자판을 눌러 단어를 입력했다. 어머니는 놀런이 글을 쓰는 동안 그의 등 뒤에 서서 머리와 목을 붙잡아야 했다. 한 단어를 입력하는 데 15분가량 걸렸다.
처음에 놀런은 하루에 한 문단을 겨우 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빨라져 비장애인보다는 느리지만 마음껏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이후 놀런은 내면에 숨겨진 작가정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15세 때 출간한 첫 시집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제임스 조이스의 뒤를 잇는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다시 휘트브레드 북 어워드 시상식장. 놀런이 쓴 수상 소감을 어머니가 대신 낭독했다.
“기뻐서 소리치고 싶어요.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역사에 기록된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 아셔야 해요. 장애를 가진 한 남자가 세계 문단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훌륭한 작가가 됐느냐’는 질문에 놀런은 이렇게 고백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줬기 때문입니다.”
더블린에서 작가와 같은 학교를 다닌 록밴드 ‘U2’는 놀런을 다룬 곡 ‘기적의 약(Miracle Drug)’을 2004년 발표했다. 노래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난 네 머리 속에 가보고 싶다. 하루 정도 거기 머물러서 네가 하지 않은 말을 듣고 네가 볼 만한 것을 보고 네가 전화할 때 듣고 싶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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