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공산당 선언

洪 海 里 2007. 2. 21. 07:46

"[책갈피 속의 오늘]

 

1848년 마르크스 ‘공산당선언’ 출간"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 각국에서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루이 필리프가 이끌었던 7월 왕정이 무너진 프랑스의 ‘2월 혁명’을 비롯해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지에서 혁명이 불붙었다. 1848년은 나폴레옹 몰락 이후 보수화한 유럽 질서가 뒤흔들린 해였다. 그해 2월 21일 나온 ‘공산당 선언’은 이 혁명의 기운을 ‘유령’이라고 불렀다.

‘공산당 선언’은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국제 노동자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의 의뢰로 저술한 강령이다. 대량으로 인쇄된 게 아닌 만큼 이 선언이 혁명의 불을 지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 짧은 저서의 의의는 ‘19세기에 나온 미래학’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이 소책자에서 모든 사회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혁명 계급으로 본다. 생산수단의 공유를 통해 지배구조를 폐지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자유를 실현한다는 게 이상(理想)이다. 사회 질서의 폭력적 전복을 주장하면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로 끝나는 이 책은 격렬한 선전문처럼 읽힌다. 그러나 ‘공산당 선언’만큼 당시의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한 저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그전까지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해 빚어지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다(공저이긴 하지만 엥겔스는 1883년 독일어판 서문에서 이 선언의 근본사상은 온전하게 마르크스의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각국에서 자본주의가 세를 불려가던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자본의 논리에 짓눌리고 종국엔 내팽개쳐지는 인간에 주목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그런 인간의 상징이었다. 유명한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타인이 “19세기의 유일한 미래학자가 있다면 카를 마르크스요, 유일한 미래학이 있다면 그것은 공산주의”라고 평할 만큼 이 책의 통찰력은 놀라웠다.

물론 그의 주장은 틀렸다.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공유할 것을 천명했지만 생산수단을 공유·관리·독점하는 사회조직은 오히려 더 폐쇄적인 절대주의 국가를 만들어냈다. 자본주의가 결국 자기모순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내다봤지만, 붕괴한 것은 사회주의였다.

실현되지 않은 예언서임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선언’이 계속해서 연구되는 것은 흥미롭다. 이 저서만큼 자본주의의 이면을 잘 보여 주는 것도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이후 원전 번역본만 네 종이 나왔으며 많은 연구서와 대중교양서를 통해 ‘공산당선언’의 의의가 소개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