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문학을 하면 밥이 나온다?

洪 海 里 2007. 4. 2. 07:08

"세 명의 공주, 세 명의 왕자"

 

장영희(서강대 영문학 교수)

 



가끔 TV에 스타들의 멋진 집이 나온다. 으리으리하고 전망 좋고 아름다운 집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그런데 거실은 물론 침실까지 구석구석 보여 주는데 집집마다 옷방은 있어도 서재는 없다. 서재는커녕 아주 작은 책꽂이나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삶의 풍경 안에 책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테리어이다. 사방 벽에 책이 가득 꽂혀 있다면 아무리 비싼 가구나 대형 TV라도 비할 바가 아니다. 읽지 않을 책이라면 뭐 하러 꽂아 놓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윈스턴 처칠은 ‘책을 읽지 않으려면 그냥 냄새 맡고 만지고 쓰다듬기라도 하라’고 했다. 책을 읽지 않고 단지 제목만 보아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 속에 책이 존재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데 책을 읽는다 쳐도 요즈음은 실용서만 나돌고 인문학 서적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인문학’ 다음에 꼭 따라 나오는 말이 있다. 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느냐 돈이 나오느냐.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고 돈이 나온다. 아니, 요새는 문학을 해야 밥도 나오고 돈도 나온다.

문학을 하면 밥과 돈이 나온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빌 게이츠는 말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하버드대 졸업장도 아니고(그는 하버드대를 스스로 중퇴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도 아니고 내 어머니도 아니다.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거장인 그가 재미있는 말을 덧붙인다.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결코 컴퓨터가 책을 대체할 수 없다.” 얼마 전 미국에서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최고경영자(CEO) 중 70% 이상이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나왔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CEO들도 스스로 독서광이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원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금 정보시대를 지나 생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누가 더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누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느냐가 성패를 가름한다. 이제는 다섯 살짜리 꼬마도 컴퓨터 키 하나만 클릭하면 정보는 물밀듯이 쏟아진다. 정보 자체로 남는 정보는 전혀 쓸모가 없다. 누가 더 그 정보를 창의적으로 조합하고 디자인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즉 누가 ‘플러스알파’의 생각을 더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요즈음 학생들은 ‘영상세대’이다. 그만큼 책, 즉 종이라는 매개체를 거북해하고 무엇이든 스크린을 통해 해결하려고 든다. 하지만 TV나 인터넷 정보는 비판력을 기르기보다 두뇌의 수용성만을 조장할 뿐이다. 책을 읽다가 밑줄 긋고 한 번 생각해 보고 아까 읽었던 부분 다시 찾아보고, 중간에 피곤하면 졸기도 하고…. 그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우리 학생들은 영어를 참 잘한다. 미국에서 살던 학생, 어학연수 갔다 온 학생은 물론이고, 영어권 나라 근처에도 가 보지 않았어도 완벽한 발음으로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것은 말은 잘하는데 글쓰기는 못한다. 아니, 글은 쓰는데 영 생각이 없다. 작품 분석을 하라면 줄거리만 얘기한다. 나도 영어 가르치는 사람 중 하나지만, 영어 능력은 단지 의사소통 기술일 뿐, 절대 목적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생각이 없는 사람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영어만 잘하면 만사형통이라면 미국 거지들은 왜 거지이겠는가.

‘생각의 시대’ 창의력 교육 절실

그래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영어마을은 많이 생기는데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독서마을은 안 생긴다. 모두 다 공유하고 있는 정보에 창의적인 ‘플러스알파’를 더해서 정말 밥 나오고 돈 나오는 길을 찾는 법을 우리는 가르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세 명의 늙은 공주(문학, 사학, 철학)가 세운 나라를 이제는 세 명의 젊은 왕자(경영, 과학, 기계공학)가 통치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늙은 공주들을 무조건 늙었다고 쫓아낼 게 아니라 젊은 왕자들이 그들에게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야말로 진정한 미래가 있는 좋은 나라이다.
 (동아일보 2007.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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