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스크랩] 『우리시』 2007. 5월호(제227호)

洪 海 里 2007. 5. 7. 20:30
 

지난달에 내가 읽은 시


 거리에서 거리를 재다 |송문헌


지치고 쇠약해진 들녘 곳곳에서 풀잎이 돋아나고 꽃들이 다시 피어나는 시절 봄이 오면 경이롭고 늘 새롭지만 때론 그 속에 묻혀갔던 지난 시간들이 되살아 달려오기도 한다. 그들은 또한 문득 행복한 추억이거나 애틋한 그리움의 모습으로 한동안 저마다의 가슴을 뒤집어 놓고 머물며 속앓이를 하게도 하리라. 순하디 순하게 웃는 모습만 떠오르는 이영혜 시인의 가슴속에도 봄은 이렇듯 순결한 백합꽃 속에서 마저 주체할 수 없는 봄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화병에 꽂힌 백합

꽃잎 활짝 벌린 음부, 암향 지독하다

노란 머리 수술들이 일제히

정충처럼 암술머리를 향하고 있다

손 뻗으면 언제라도 잡힐 듯한

지척의 거리, 그러나

발기된 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저 환장할 거리

한 발도 더 다가갈 수 없는

절망의 거리가

내 한숨에 파르르 떨린다

암술에 안착하지 못한 노란 꽃가루들이

정액처럼 흰 꽃잎에 점점이 얼룩진다


마음으로 수천 번도 더 달려간

내 그리움, 그 캄캄한 거리에

깜빡 가로등이 켜진다

벌 나비 기다리다 목 늘어진 꽃

나는 실어증 걸린 손전화를

종일 만지작거리고 있다

- 이영혜 시인의 「거리」 전문


암컷을 코앞에 두고도 벌과 나비와 바람에 의해서만 교접이 가능한 꽃들의 모습에서 시커멓게 타버릴 것 같은 안타까운 그리움을 발견해내는 시적 사유가 돋보인다.


“지척의 거리, 그러나 / 발기된 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

저 환장할 거리 / 한 발도 더 다가갈 수 없는/···”


살아가면서 탐해선 안 될 탐욕이나 그리워해선 안 될 그리움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탐할 수 없고 작정도 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그런 그리움들을 상처처럼 하나씩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사람들은 너무 행복하거나 너무 힘들어지면 고통처럼 때론 절절한 그리움이 솟구치기도 하리라. 이영혜 시인은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아나는 것일까. 새삼 놀랍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에게 더욱 건필하기를 바라며 파이팅을 보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의 시가 가슴에 와 닿을 때 작자에 대한 상상은 때론 묘한 전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처럼 아는 이의 시에서 새로운 모습을 볼 때 또한 그와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 뿐만은 아니리라. 보이는 모습 뒤에 가려진 암팡진(?) 그의 리얼하고 당찬 다음 작품을 나는 다시 기대해 보기로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이영혜 시인에게 넘깁니다.

출처 : 우리시(URISI)
글쓴이 : 은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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