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고 많은 우리 문학작품 중에 상여행렬조차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글이 또 있을까. 최명희(1947∼1998)의 ‘혼불’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소설가 최일남 씨가 ‘혼불’에 대해 “미싱으로 박은 이야기가 아니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뜬 이바구”라고 한 이유를 알 만하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씨는 “우리 겨레의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내는 풍속사이기도 한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읽으면 판소리 가락이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들은 국어시간이면 순번을 정해 수업 시작 전에 시(詩) 한 편을 칠판 가득 써 놓아야 했다. 릴케건 이육사건 어떤 시인의 시도 좋았다. 선생님은 10분 정도 운율에 맞춰 시를 낭송하게 한 후 시의 배경과 특징 등을 설명해 주었다. 서정주나 윤동주의 시가 적힌 날은 시로 시작해 시로 수업이 끝날 때도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교과서는 덮어 버리고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부르거나, 시를 외우도록 했다. 우리는 또 ‘연상수첩’이란 작은 노트를 한 권씩 마련해야 했다. 선생님은 시 낭송이 끝나면 연상수첩을 펴게 한 후 매일같이 그날의 ‘단어’를 불러 주었다. 우리는 연상수첩에다 그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단어들을 써 내려갔다. 연상 작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연상한 단어들을 읽게 했다. 우리는 ‘봄’이라는 단어가 20회쯤 연상을 거듭해 어떤 아이에게는 ‘죽음’이 되고 다른 아이에겐 ‘사랑’이 되는 언어의 마술을 경험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학수업에 필수적인 이미지 훈련법이었다. 요즘엔 학교마다 논술 준비에 허덕이고, 가정에선 비싼 돈 들여 논술과외까지 하느라 난리라는데 우리는 저절로, 공짜로 ‘문학의 바다’에서 놀았던 것이다.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의 힘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느낀다. 혼불의 무대가 되었던 전북 남원시 사매면의 삭녕 최씨 폄재공파 종가(宗家)가 지난주 화재로 불타고 종부(宗婦) 박증순(93) 씨가 숨졌다고 한다. 생전에 선생님은 이 집에 자주 놀러 가 혼불 속의 효원 아씨의 모델로 알려진 박 씨와 얘기를 나누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박 씨의 참변에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졸업 후 한 번도 찾아뵌 적 없는 무심한 제자지만 슬퍼하실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오래 아릿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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