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안에서 돌볼 일이 더 많습니다.

洪 海 里 2007. 9. 5. 07:09
안에서 돌볼 일이 더 많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기적을 이뤘다. 1945년 50만 명에 불과했던 개신교 인구는 1995년에 876만 명으로 급증했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의 교회 지도자들은 도시의 밤하늘 아래 수없이 반짝이는 십자가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들에게 한국은 하나님이 선택한 ‘은총의 땅’이었다.

엎친 데 덮친 개신교의 위기

기적은 같은 기독교인 천주교에도 있었다. 1789년 어느 날 중국 베이징의 천주교회에 낯선 조선인이 방문했다. 찾아온 사연은 조선에도 천주교도가 있으니 미사를 볼 수 있도록 신부를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조선인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서적을 통해 천주교의 존재를 안 뒤 스스로 신앙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국 천주교는 외부의 선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린 희귀한 사례다.

두 개의 기적을 놓고 어떤 이들은 한국인의 특별한 종교적 열정을 거론한다. 개신교의 공세적 선교 방식이 비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착은 그보다는 시대 흐름과 맞았기 때문이다.

초기 천주교 신자 중에는 실학자가 많았다. 당시 천주교는 서양의 앞선 문명과 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답답한 유교 질서 속에서 새로운 문물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천주교를 이 땅에 자리 잡게 했다. 개신교가 1960, 70년대에 성장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근대화 산업화가 절실했던 시기, 발전된 서구 사회를 대표하는 종교로서 성실과 근면을 강조하는 개신교에 사람들은 마음이 끌렸다.

이번 인질 납치 사건이 일어난 뒤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개신교 정서가 일고 있지만 사실 이전부터 개신교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선호도 조사를 해 보면 개신교는 불교 천주교 다음으로 밀렸다. 200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서 개신교 인구가 861만 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15만 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자 개신교계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 개신교의 침체는 ‘따 놓았던 점수’를 잃은 탓이다. 교회 비리는 다른 종교에도 있는 일이지만 대형 교회의 세습이나 각종 신학교의 난립, 교파 분열처럼 예상치 못한 개신교의 일그러진 모습은 비종교인들이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종교에 귀의하려는 많은 사람은 불교나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다. 고속 성장의 단맛에 빠진 개신교는 생존경쟁으로 치닫는 현대인들이 종교에 뭘 바라고 있는지 놓치고 말았다.

개신교가 해외 선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국내에서 한계를 느껴 눈을 밖으로 돌린 측면이 적지 않았다. 소속된 교회가 해외에서 선교사업을 벌이면 자연스럽게 내부 단합이 이뤄지는 효과가 있었다. 여러 교파는 다른 교파에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외국으로 향했다. 한국 개신교가 해외에 파견 중인 선교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만6000명에 이른다. 파견된 나라 만 173개국이다. 선교 방식은 갈수록 공격적이 됐고 언젠가는 큰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선교와 봉사가 우선이다

요즘 개신교에 자성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개신교 인사들은 ‘정부 권고를 따르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침통한 표정이다. ‘그래도 선교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원칙론의 확인에 불과할 뿐 교계 전체의 목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회개와 반성이 해외 선교를 재정비하는 좁은 수준에 머문다면 흐름을 잘못 읽는 것이다.

국내 선교가 부진한 가운데 외국에 발걸음을 돌린 것은 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전체 국민 가운데 종교를 갖고 있는 인구는 1985년 42.6%, 1995년 50.7%, 2005년 53.1%로 늘어났다. 종교에 대한 기대와 갈망이 크게 높아진 시기에 개신교는 외국을 택한 것이다. 봉사든, 선교든 우선순위는 우리 내부에서 종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주변을 보라.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안을 돌보는 것, 개신교가 할 일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동아일보)

'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갈피> 2000년 황순원 선생 타계  (0) 2007.09.14
<책갈피> 고추잠자리  (0) 2007.09.05
<책갈피> 이름 숨긴 기부  (0) 2007.07.13
최명희의 추억  (0) 2007.05.21
아름다운 퇴장!  (0) 2007.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