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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가는 길

洪 海 里 2007. 9. 20. 17:48


 
청주 가로수길
 
홍 권 희

 


고대 중동에선 무화과나무나 아몬드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나그네들이 따먹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중국 주나라는 복숭아나무 자두나무를 심었다. 조선의 태종은 1405년 한양 가로변에 나무를 심게 했다는데 어떤 나무였는지는 기록에 없다. 요즘 가로수는 기온을 2∼6도 낮춰 주고 습도는 9∼23% 높여 주며, 한 그루가 4명이 마실 수 있는 양의 산소까지 공급한다. 고마운 존재다. 연간 가로수 관리 예산은 한 그루에 6000원꼴이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가로수길 중 한 곳이 경부고속도로 청주 나들목에서 청주 강서동 반송교까지 4.53km 구간이다.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1088그루가 터널을 만들고 있는 이 길은 인기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최민수가 고현정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달리던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짧은 드라이브가 아쉽기만 한 이 길은 사계절 나무들의 변신까지 모두 봐야 풍취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이 가로수들이 ‘부친’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다. 1952년 양버즘나무 묘목 1600그루를 이곳에 심어 지금의 모습으로 키워 낸 홍재봉 씨가 17일 향년 95세로 별세했기 때문이다. 홍 씨는 39세에 충북 청원군 강서면장에 당선된 뒤 나무를 심어 지성으로 가꿨다. 행인이나 아이들이 훼손하지 못하게 보초를 선 날도 많았다. “나무는 심기만 해선 안 되고 자식처럼 정성으로 돌봐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 그대로였다. 그 후, 도로 확장 등 여러 차례 위기도 있었지만 그는 지극정성으로 나무를 지켜 냈다.

▷이 가로수길이 요즘 교통량 증가에 따른 도로 확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공사 계획도 바뀌기 때문이다. 전임 시장 때는 가로수길을 공원으로 만들고 양쪽으로 도로를 내기 위한 기초공사가 진행되다 지금은 중단됐다. 남상우 현 시장은 시민 여론조사를 토대로 가로수길 옆으로 차도와 보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가 일부 시민단체의 공격을 받았다. 가로수길이 멋을 잃지는 않을지 불안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동아일보)


<시>

淸州 가는 길

 

洪 海 里

 

플라타너스
기인 터널을 지나면
내 고향
청주가 배처럼 떠 있고
상당산성 위로
고향 사람들은 만월로 빛난다
봄이면
연초록 연한 이파리들이
손을 모아 굴을 만드는
서정
여름이면
초록빛 바닷속
아늑한 어머니 자궁으로
넉넉히 새끼들을 기르고
가을이면
서걱이는 갈빛
포근한 안개가 금빛 들을 감싸  안는
풍요
겨울이면
맑은 뼈마디로
장성한 자식들을 떠나 보내는
어버이처럼
흰눈을 쓰고 서 있는
고고
플라타너스의 연륜의 이마
그 밑을 지나 고향에 닿으면
늘 그렇듯
무심천 물소리처럼
우암산 바람결처럼 
비인 듯 충만한
그곳 사람들.

 

(『난초밭 일궈 놓고』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