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스크랩] ‘우리시’ 11월호와 콩짜개덩굴

洪 海 里 2007. 11. 4. 04:37

 

어제는 따라비와 설오름에 다녀왔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와 곳곳에 널려있는 들꽃들

싱싱한 쑥부쟁이와 물매화, 그리고 섬잔대

자주쓴풀과 미역취와 꽃향유 등등…


하지만 이네들은 벌써 이곳에 실려 있는 것들이어서

설오름에 갔다 오다가 참빗살나무와 차나무꽃

교래리에서 점심을 기다리면서 고목 전체에 붙은

이 콩짜개덩굴을 찍었습니다.

 

콩짜개덩굴은 고란초과의 상록 양치식물로

해안지대와 섬의 바위 또는 노목 겉에 붙어서 자라며

가는 뿌리줄기가 옆으로 벋으면서 잎이 군데군데 돋는데

잎은 포자낭군이 달리는 포자엽과 달리지 않는 영양엽이 있습니다.


콩나물 대가리를 짜개놓은 것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간혹 콩짜개난과 혼동을 하는데 콩짜개난은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작은 꽃대가 나와 노란 꽃을 피웁니다.

마침 ‘우리시’ 11월호가 도착하여 따끈따끈한 시 4편을 골라 같이 보냅니다.

 

 

♧ 이어도 - 송문헌


(추석 연휴 때인 2006년 10월 5일 ‘외로움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는 다섯 장의 유서와 함께 택시운전을 하며 평생 고아로 살아온 쉰두

살 정 모 씨는 제주의 자기 집 문고리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

되었다. 2005년 3월 달력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2006년 10월 5일

발견 되었으니 19개월 만에 세상에 알려진 셈이다)


나 이제 훨훨 날아가렵니다

바닷바람을 날리며


삼월

내겐 아직 떠나지 않는 겨울이 머물고

더는 추위를 견뎌낼 재간이 없어 남루한 생애,

단거리 옷 벗어 문고리에 걸어둔 채

겨울 시간들 모두 두고, 이젠 떠나갑니다


성산포 해오름

아침 햇살이 택시 창유리 따습던 그리운 바다

갯마을 아주망도 잊으렵니다


홀가분하게 바다하늘을 날아

아지 못할 먼먼 고향, 찾아 갑니다

산발치 양철지붕 아래 뛰놀던 망아지도

어느 밭둑 아래 쑥대머리를 하고 누워계실

부모님 산소도 이제 찾아보렵니다


홀로 오십이 년

흰 종이 다섯 장에 묘비명 새겨두고

차가운 3월 달력 하나 덤으로 걸어둔 채

제주바다 이어도 내 길을 찾아 떠나갑니다

아아 열아홉 달만의 외출,

이 어둡고 화안한 자유


 

♧ 파도상자 - 백영희


하얀 칼날이 춤으로 엮은

몇 천 년 전의 바람이

바다와 몸 부비며 이야기를 쏟아낸다

물보라의 방울방울에

빛으로 솟아

그녀의 눈 속에 그림으로 앉았다

파도의 이야기를 듣는 귀는 메아리로 천 년을 살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파도에

이름을 짓고 일곱 색깔로 나누면

세월의 담이 우르르 무너진다

파도를 납작납작하게 칼로 쓸어

그녀의 가슴에 밀어 넣고

파도끼리 부딪치는 소리 듣는다

바람의 팔뚝에 투명의 상자 속에

우주의 암호로

파도의 이야기 반짝인다

이별의 손짓에 바다는 찢긴 몸 흔들며

부산타령을 흥얼거린다

 

 

♧ 병(病) - 정진경


아버지 주려고 담근 오디주

발효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사라졌으므로

뚜껑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오디주 병 안에 밀봉되어 버렸고

아버지와 함께 순장된 오디를 나는

죽음이라 생각했다

존재할 의미를 상실했다고 생각한 어느 날

오디주 붉은 핏줄이 술병을 타고 오르면서 살아났다

봉인된 마개를 언제 헐었는지

오디주를 먹은 아버지

온몸에 오디주를 품고 저승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순장이 죽음이라는 인식을 뒤엎었다


순장하는 풍습은 죽음이 아니라

홀로 있는 시간을 배척하는 사람의 병이다

아버지를 홀로 보내지 않으려는

내 병 증세이다

 

 

♧ 파문 - 홍해리


   1


나무는 서서 몸속에 호수를 기른다


햇빛과 비바람이 둥근 파문을 만들고

천둥과 번개가 아름답게 다듬어


밖으로 밖으로

번져나간다


파문이 멎으면 한 해가 간 것이다


   2


잎 나고 꽃 피어 열매를 맺는 동안

속에서는 물이랑을 짓다


열매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나무는 일년을 마무리하고


제 옷을 벗어 시린 발등을 덮고 나면

가지마다 악기가 되어


겨울을 노래 부를 때

하늘도 투명한 파문이 이는 호수가 된다.

 

 

♬ The Long Road - Mark Knopfler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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