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우이도원牛耳桃源 / 林步

洪 海 里 2007. 11. 15. 05:38

우이도원牛耳桃源

 

林 步

 

 

청명한 가을 어느 일요일 아침, 우이시회의 몇 회원들이 우이도원엘 오른다. 도원의 벌초를 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여름이면 몇 번씩 벌초를 했었는데 금년엔 이런저런 일들로 미루다 많이 늦어졌다.

우이도원(牛耳桃源)은 우이동의 북한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삼각산 밑 도선사 우측의 능선을 올라선 다음, 오솔길을 따라 3, 4백 미터쯤 내려가다 보면 주위에 아름드리 오동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아늑한 공지를 만나게 된다. 청룡과 백호의 좌우능선을 제대로 거느리고 있는 양지바른 명당이다. 큰 돌들로 축대를 쌓은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옛날 암자가 있던 절터인 것도 같다.
그 공지의 개울가에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서 있다. 수십 년 묵은 거목인데 봄철이면 그놈이 피워대는 꽃이 참 장관이다. 그놈이 수십만 송이의 꽃들을 매달고 있을 때는 마치 거대한 모닥불을 피운 듯 주위의 산천이 온통 환하다. 원래 도화란 아름다운 꽃이지만 청정한 산속에서 홀로 자란 이놈은 격이 다른 비색(秘色)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매년 봄 복숭아꽃이 필 무렵이면 이놈이 피운 꽃을 구경하기 위해 우이동 시인들은 안달이다. 너무 일찍 찾아갔다가 꽃몽우리들만 보고 내려오기도 하고, 혹은 너무 늦게 찾았다가 지는 꽃잎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놈이 꽃을 피우는 시기가 마을의 여느 복숭아나무와는 달라서 절정의 꽃을 때맞춰 보기가 쉽지 않다. 산을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의 입을 통해 화신(花信)을 전해 듣고 찾아가도 때를 놓치기가 일쑤다.  

우이동 시인들이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이 복숭아나무를 적적하게 생각하여 그 주위에 몇 그루의 도화를 더 심어 도원(桃園)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하여 수년 전 충북 옥천에서 50여 그루의 묘목을 구해다 정성껏 심고 가꾸었다. 그리고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꿈꾸면서 ‘우이도원(牛耳桃源)’이라 명명하게 된 것이다.
이젠 그 묘목들이 많이 자라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섰다. 지난봄부터서는 이놈들도 꽃을 피워대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별유천지(別有天地)다. 봄이면 이 골짝이 온통 복사꽃 사태가 나서 황홀한 무릉이 된다. 비록 세속의 때에 전 속인일지라도 이 골짝의 도화 속에 들면 잠시 신선이 될 것만 같다. 도원(桃源)이 선경(仙境)을 이르는 말인 걸 보면 예부터 선인(仙人)들도 도화를 기려 가까이했던 모양이다.  

산속에 복숭아나무를 심어놓고 그 꽃이나 바라다보며 살다니, 이 바쁜 세상에… 이렇게 우이동 시인들을 빈정대는 사람도 없지 않으리라. 아니, 우이도원에서 우리 시인들이 하는 일들을 세상이 안다면 아마 배꼽을 잡고 웃을는지도 모른다.
우이시회에서는 매년 우이도원에서 공식적인 두 행사를 갖는다. 봄의 시화제(詩花祭)와 가을의 단풍시제(丹楓詩祭)다. 백화가 난만한 봄과 단풍이 눈부시게 물든 가을이면 자연 속에 들어가 시와 노래와 주과(酒果)로 천지신명께 제를 올린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문명의 이름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더럽히는 우리 인간들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와 국악과 춤이 함께 어우러진 축제이기도 하다. 이 축제가 바로 우이도원에서 행해진다. 그러니 우이도원은 신성한 제단(祭壇)이면서 또한 시인들의 흥겨운 놀이마당이기도 하다.

이 바쁜 세상에 복숭아꽃 들여다볼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맞는 말이다. 각박한 일상의 수레에 실려가다 보면 주위에 시선을 돌릴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세상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구획 포장된 일상의 보도(步道)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열심히 걸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전전긍긍해서 결국 그들이 도착하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고뇌와 번민의 세속으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방황에 불과하지 않던가.
삶에는 적절한 일탈(逸脫)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모험을 하기도 하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사유(思惟)도 일탈을 필요로 한다. 인습의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고(思考)의 자유― 바로 그 자유를 적극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시인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시인들은 허황된 이상주의자들인지 모른다.

우이도원은 우이동 시인들이 가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그들의 심신을 어루만지는 휴양처다. 아니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한 표상이다. 잃어버린 유토피아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성지다. 우이도원은 아마 그들 시의 정서적인 메카로 장차 자리잡게 될지 모른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도원을 벌초하는 시인들의 바쁜 손길이 아름답다. 무성한 잡초들을 낫으로 베어 눕히고 복숭아나무 가지 위로 감고 올라간 칡이며 환삼넝쿨들을 열심히 걷어낸다. 교목에 매달린 머루넝쿨의 넓은 잎들은 어느덧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곱게 지저귀는 산새소리, 꿀벌들의 잉잉거린 날개소리에 귀가 맑게 열리고, 산국의 은은한 향기, 솔잎의 명징한 냄새에 가슴이 트인다. 잠시 땀에 젖은 얼굴을 들어 멀리 바라다보니 회색의 아파트군들이 뽀얀 도심의 매연 속에 잠겨 있다. 시정(市井)으로부터 제법 멀리 떠나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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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