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시집 ‘황금감옥’

洪 海 里 2008. 5. 8. 06:24

 

오늘 시인 홍해리(洪海里) 선생님의 시집을 받았다.

요즘 피는 노란색 꽃인 국화과의 ‘송방망이’와 같이 싣는다.


♧ 시인의 말


부족한 시, 부족의 시, 그래서 시이고 시인이다.

뒤에 '시로 쓴 나의 시론'이란 시치미를 달았다.


입때까지는 입히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부터 벗기고 벗겨 나시(裸詩)를 만나야겠다.


한 편의 시를 위하여 나를 비우고 또 비운다.

시욕(詩慾)이다.

시야, 한잔하자!


무자(戊子) 正月 초사흘,

우이동(牛耳洞) 골짜기 세란헌(洗蘭軒)에서


홍해리(洪海里)

 

 

♧ 황금감옥(黃金監獄)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 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하지 마라

티끌세상 무슨 한이 있다고

시집 못 간 처녀들

배꼽 물러 떨어지고 말면 어쩌라고


시비(柴扉) 걸지 마라

꺽정이가 날아야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굴러간다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


 

♧ 여자를 밝히다


여자를 밝힌다고 욕하지 마라

음란한 놈이라고

관음증 환자라고 치부하지 마라

입때껏 치부를 한 것도 없고

드러낼 치부도 하나 없다

여자를 활짝 핀 꽃 같이 밝혀주는 것은

무엇일까

환한 대낮같이 열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둔 길을 갈 때

등롱을 들듯

꽃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인가

등명접시 받쳐 놓고

불을 댕길 일인가, 아니지,

여자는 스스로 열리는 호수

환하게 빛나는 대지라서

하늘 아래

세상에서 여자를 밝힐 일은 없다.

 

 

♧ 오동꽃은 지면서 비를 부른다


온몸에 오소소 솟아 있는

반짝이는 작은 털 더듬이 삼아

오동꽃 통째로 낙하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아주 연한 보랏빛으로,

시나브로

동백꽃 지듯 툭! 툭! 지고 있다

처음으로 너를 주워 드니

끈끈한 그리움이 손을 잡는다

무작정 추락하는

네 마지막 아름다운 헌신,

하나의 열매를 위해

나도 이렇듯 다 포기하고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

떨어져 내린 꽃 위로

공양하듯

또, 비가 두런두런 내리고 있다

 

 

♧ 동짓달 보름달


누가 빨아댔는지

입술이 얼얼하겠다

빨랫줄에 달빛이 하얗게 널려


바지랑대가 빨랫줄을 팽팽히 떠받치고 있다

꼿꼿하다

화살이다 칼날이다

새파랗게 질린 하늘로 시위가 푸르르 떨고


보름보름 부풀더니

푸른 기운을 저 혼자 울컥울컥

토해내는 달

저 하늘에 시위나겠다


철새 몇 마리 그리고 가는 곧은 길 위로

흰 빨래 옷가지 하나 흔들린다


지상에선

긴긴 밤 참이라도 드는지

별들이 빙 둘러앉아 눈을 반짝이고

동치미 동이에 달이 풍덩 빠져 있다.

 

 

♬ Butterfly Waltz - Brian Crain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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