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인터넷式 사고와 아이패드

洪 海 里 2010. 2. 1. 07:36

인터넷式 사고와 아이패드

[동아일보] 2010년 02월 01일(월) 오전 03:00  
 

북태평양 지역의 인디언 사이엔 두 가지 배 만들기 방식이 존재했다. 나무가 없는 섬에 사는 알류트족은 해변에 밀려온 나뭇가지를 주워 뼈대를 만든 뒤 짐승 가죽을 씌워 카약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든 재료가 될 만한 것을 찾아다녀야 했다. 이에 비해 트린기트족은 커다란 나무를 베어낸 뒤 바깥을 쳐내고 안을 파내 카누를 만든다. 카약과 카누는 물에 뜨는 배라는 점은 똑같지만 결과에 이르는 방식은 정반대였다.

과학과 문화 분야의 사상가 집단인 ‘에지’(www.edge.org)는 매년 한 가지씩 회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올해 에지가 내건 질문은 ‘인터넷은 사고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31일 오전까지 172명의 글이 올라왔다.

카약과 카누의 사례는 과학사학자인 조지 다이슨 씨가 에지에 올린 글에 나온다. 인터넷 이전까지 인류는 카약을 만드는 방식으로 지식을 쌓아왔다. 주변에서 수집할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를 모은 뒤 이를 조합해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카누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거대한 정보의 나무에서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고 안팎을 다듬어야 비로소 지식의 윤곽이 드러난다.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이뤄져 왔다.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이 모두 사실인 양 믿는다거나,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인터넷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진다는 등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다.

저명한 정보기술(IT) 분야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카 씨는 인쇄된 책은 몇 페이지를 계속해서 읽는 것조차 힘들어졌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는 인터넷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하이퍼텍스트의 영향이 크다. 화면이 제시하는 대로 문서에서 문서를 넘나드는 데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기억하고 정리하며 생각을 이어가는 힘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이다.

지난주 애플이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아이패드가 상업적으로 아이폰이나 아이팟의 성공을 이어갈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인류가 생각하고 지식을 얻는 방식과 관련해선 두 가지 생각할 점을 던져준다.

우선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컴퓨터의 확산은 인터넷식 사고의 확산을 더욱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아이패드는 젊은층이나 전문가집단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는 컴퓨터’임을 내세운다. 애플 특유의 직관적이고 쉬운 사용자환경(UI)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랜 시간 동안 인터넷에 접속해 있을 것이다.

반면 독서 기능을 강조한 점은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등장하는 아이패드 소개 동영상을 보면 온라인서점인 아이북스에서 결제하는 순간 책은 화면 속 책장에 턱 꽂힌다. 책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면 실제와 거의 똑같은 페이지가 뜨고, 손가락으로 슬쩍 문지르면 그야말로 아날로그적인 모습으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책값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싸고 배송은 순식간이다. 독서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1평 남짓한 서재에서 글을 쓰다 문득 고개를 들어 서가에 꽂힌 책들을 바라본다.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부터 최근에 구입한 소설까지, 몇 번 이사를 하면서도 함께한 내 지식의 동반자들. 책을 모아놓은 공간으로서 서재의 운명은 또 어찌 될까. 이제 한 사람의 지적 편력을 돌아보려면 그의 서가가 아니라 인터넷 책 구입 목록이나 전자도서관 접속 기록을 봐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