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雪中梅
洪 海 里
창밖, 소리 없이 눈 쌓일 때
방안, 매화,
소문 없이 눈 트네
몇 생生을 닦고 닦아
만나는 연緣인지
젖 먹던 힘까지, 뽀얗게
칼날 같은 긴, 겨울밤
묵언默言으로 피우는
한 점 수묵水墨
고승,
사미니,
한 몸이나
서로 보며 보지 못하고
적멸寂滅, 바르르, 떠는
황홀한 보궁寶宮이네.
- 시집『푸른 느낌표!』(2006)
학鶴을 품다
뒷산의 깊은 침묵이 겨우내 매화나무로 흘러들어 쌓여서
오늘 가지마다 꽃을 달았다, 生生하다
매화나무 주변에 어리는 향긋한 그늘---,
그 자리 마음을 벗어 놓고 눈을 감으면
학이 날고 있다, 수천수만 마리의 군무가 향그러운 봄날!
- 시집『봄, 벼락치다』(2006)
꽃
이승의 꽃봉오린 하느님의 시한폭탄
때가 되면 절로 터져 세상 밝히고
눈 뜬 이들의 먼 눈을 다시 띄워서
저승까지 길 비추는 이승의 등불.
-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뚝!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지는 꽃을 보며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서산에 해는 지고 밤이 밀려와 새들도 둥지 찾아 돌아가는데 가슴속 빈 자리를 채울 길 없어 지는 꽃 바라보며 홀로 섰느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
- 시집『愛蘭』(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