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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전자책 시대 ‘여백에 글쓰기’도 사라지나

洪 海 里 2011. 3. 2. 10:37

전자책 시대 '여백에 글쓰기'도 사라지나

 

제퍼슨-마크 트웨인 등 명사들 즐겨 써
“읽은 이 생각 캐낼 보물” 서지학적 가치

 

마크 트웨인(왼쪽)이 ‘펜과 책’이라는 도서의 여백에 쓴 메모. ‘허클베리 핀’의 출판과 성공에 대한 느낌을 밝혔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미국의 역사학자와 서지학자들을 흥분시키는 일이 최근 발생했다.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책 74권이 새롭게 발견된 것.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서 이 책들이 발견되자 많은 학자가 이 도시로 향했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제퍼슨이 책에 어떤 메모를 남겼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독서가이자 책 수집가로 유명했던 제퍼슨은 책의 빈 공간에 종종 글을 남겼다.

자신의 이름을 써넣거나 책 내용에 주석을 달았고, 틀린 글자를 바로잡기도 했다.

이처럼 책 읽는 사람이 책 빈 곳에 남기는 글을 ‘마지널리아(marginalia)’라고 부른다.

역사학자와 서지학자들에게는 금광과도 같은 것이다.

당시 이 책을 읽은 이의 생각을 비롯해 당대의 역사적 정황까지도 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뉴베리 도서관에 있는 ‘펜과 책(the Pen and the Book)’은 ‘출판에 관한 책’이다.

내용은 평이하지만 감시카메라 아래서만 열람이 가능할 정도로 보물 대접을 받는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글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트웨인은 책 여백에 ‘책을 팔기 위해 소금, 담배 같은 생필품처럼 책 광고를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글을 적었다.

  이 사례에서 보듯 여백에 남긴 글은 책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유명인이 남긴 글만 중요한 게 아니다. 미국 시인 빌리 콜린스는 ‘마지널리아’를 주제로 한 시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에 남겨진 글을 보면 막 고교에 입학해 이 책을 읽은 소년이 독서를 통해 어떤 열정에 휩싸였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책의 여백에 쓴 글은 단순한 낙서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만 전자책의 확산으로 마지널리아의 전통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책 여백에 글을 쓰는 일은 1800년대엔 흔했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생물학자 찰스 다윈도 글 남기는 일을 즐겼다.

이런 행위는 20세기 들어 품위를 해치는 짓으로 여겨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1977년 수감생활 도중 감방에 나돌던 셰익스피어 책에 서명한 일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겁쟁이들은 실제 죽기 전에 여러 번 죽는다’라는 구절 아래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그러나 책이 점점 디지털화하면서 이 같은 ‘여백 낙서’의 여유도 사라지고 있다.

  마지널리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책을 내거나 학술모임을 갖기도 한다.

 

시카고의 애서가 모임인 ‘캑스턴 클럽’은 3월 유명인들의 메모가 담긴 책들에 관한 에세이가 출간되는 것에 맞춰 ‘다른 사람들의 책’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문인, 학자, 도서관 전문가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주요 참석자들은 심포지엄에 앞서 뉴욕타임스에 마지널리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히더 잭슨 캐나다 토론토대 영문학 교수는 “마지널리아를 분석하면 독자들이 그 책에 보이는 감정적 반응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