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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이야기

洪 海 里 2011. 7. 25. 13:44

                  

  부

 

날이 더워질수록 부채를 가까이 하게 된다.

시원하게 해 주는 것으로야 더 좋은 선풍기나 에어컨이 있지만,

더운 날 누각에서 한가로히 부채를 부치며

시원한 우물물에 담궈두었던 수박 한 조각 입에 물면

이것이야말로 더위를 이기는 방법 중에서 최상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 풍류남아였던 임제는 부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적어 어린 기생에게 보냈다.


     [ 한 겨울에 부채 선물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어찌 능히 알겠느냐만

        한밤중 서로의 생각에 불이 나게 되면

        무더운 여름 6월의 염천보다 뜨거우리라.            ]

                                                                   * 6월은 음력이다.


부채에 사용하는 대나무와 한지는 모두 음陰의 기운을 갖고 있어,

옛 선비들은 부채를 <첩妾>이라 부르며

부채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선추에 금, 은, 비취, 호박 등 갖은 치장을 하고 애지중지하였다고 한다.

부채살이 50개인 <오십살 백접선>을 왕실 직계만 사용하였다.

사대부는 40살, 이하 중인과 상민은 그보다 살을 적게 넣어야 했다.


                                           * [閒雲野鶴한운야학]이 씌어진 부채 :

                                                          한가로운 구름과 들에 있는 학이라는 글.

                                                          <閒>은 그야말로 한가하게 [반쯤 열린 사립문 위에 달이 걸린 모습]이고,

                                                          <雲>은 [구름 모양]으로,

                                                          <野>는 [수풀 林과 흙 土]로 표현하였다.

                                                          <鶴>은 [글씨 자체가 한 쌍의 학]이다.

                                                          인간세의 모든 욕망을 털어버리고 한가롭게 살아가려는.....의미로 보인다.

                                                          수 년 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받아, 여름만 되면 참 긴요하게 이용하고 있다.

 

 

부채의 종류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태극선 太極扇 : 우리 부채의 기본형인 [단선]의 일종으로,

             부채의 가운데에 작은 태극문양을 붙인 <알태극선>과

             부채의 전체가 태극문양인 <태극대원선>이 있다.

미선尾扇 : 단선의 일종으로 부채의 윗부분이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조류나 어류의 꼬리를 닮아 미선이라고 한다.

선녀선仙女扇 : 부채의 윗부분만이 아니라 자루가 달린 부분에도 선녀 머리처럼 올록볼록하게 만든 것.

파초선芭蕉扇 : 선녀선보다 크고 자루가 부채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파초 잎을 닮았다.

윤선輪扇 : 차바퀴처럼 360도로 동그랗게 펼쳐진 둥근 부채로 단선이나 접선(접는 부채) 모두에 있다.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보다는 크게 만들어 펼쳐 일산(日傘, 양산)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크기가 작은 것은 <소윤선小輪扇>이라고 한다.

합죽선合竹扇 : 접는 부채를 대체로 합죽선이라고 하며,

          합죽선의 겉대에 대모(거북이 등껍질)를 장신한 <대모선>이 있으며 이것은 고급품이다.

 

조선조 선비들은 의관에다 합죽선을 손에 쥐어야 외출을 했다.

 

부채는 길을 가다가 거북한 상대를 만나면 외면하지 않고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시조가 가곡의 창에 장단을 맞추는 데도 이용했으며, 괴한을 만나면 호신용으로도 이용하였다.


서민 여성들은 <단선(방구부채)>이라 불리는 평평하고 둥근 부채로 불도 일으키고 곡식도 걸렀다.

부들이나 왕골처럼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든 부채는 방석 대신 깔고 앉기도 하고 짐을 머리에 일 때 똬리 대용으로도 사용했다.

8가지 효용이 있다는 뜻으로 [팔덕八德, 팔용]이란 이름을 붙였다.

왕실의 직계 여성이나 기생들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합죽선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불교에서는 인간 세상을 [불타는 집 火宅]에 비유한다.

불교의 최고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법화경法華經>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부자가 사는 큰 저택에 어느 날 불이 났다. 집은 점점 불길에 휩싸이고 있는데

집 안에는 부자의 여러 아이들이 불이 난 줄도 모르고 놀이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그렇듯이 세상 사람들도 시시각각 닥쳐오는 불행과 죽음을 모르는 채 눈앞의 이익과 탐욕에 집착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불이 난 곳이 어디고 불이 날 곳이 어디인가.

어디가 안전한 곳인가.

미리 미리 화재 예방을 잘 한 사람은 늘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불타는 집에 살고 잇다. 더 큰 불이 우리의 몸을 태우기 전에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깨닫지 못한 채 아이들처럼 놀이에 빠져 있다.

대립과 갈등 속에서 함께 불구덩이를 맞이하는 것이다.


작은 불길은 또 다를 불길을 초래하고, 점점 더 커져 간다.


법화경에서 부자는 불타는 집 안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너희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많이 있으니 얼른 나오라>고 소리 쳤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무사히 불난 집에서 빠져 나왔다.


불타는 집에서 나오기 위한 우리의 장난감은 무엇인가.

부채가  사람의 불을 끌 수 있을 까.... 혹은 불을 더 일으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