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고마워요, 돈 오브라이언" / 洪錫珉 기자

洪 海 里 2012. 5. 28. 06:36

"고마워요, 돈 오브라이언"

 

  당신의 사진을 처음 접한 건 2007년이었지요. 당시 주목받던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에 한국 사진은 어떤 게 있는지 둘러보던 참이었어요. 수만 장의 사진 중 흑백사진 한 장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Korean businessman’이라는 제목을 단 한복 차림의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의 모습. 1945년 11월 서울에서 촬영했다는 그 사진에서 옛 기억 속 제 증조부의 이미지를 발견했거든요.

  얼마 전 플리커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당신의 사진을 다시 보았습니다. 당신을 플리커 ‘이웃’으로 지정해 놓고 주말 내내 당신의 사진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4000장이 넘는 사진 가운데 특히 ‘Korea’ 항목으로 분류된 199장은 적어놓은 메모까지 꼼꼼히 읽었습니다. 미국인인 당신의 카메라에 왜 1945년의 한국이 담겼는지 궁금했습니다.

  돈 오브라이언. 미국 오하이오 주 워싱턴(Worthington) 출생. 당신이 첫 카메라인 코닥 브라우니로 1935년에 찍은 초등학교 5학년 동급생 사진을 근거로 1924년생일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8 시그널 사진중대’에 배속됐고, 프랑스에 배치됐다가 1945년 10월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왔더군요.

  이듬해 봄 귀국 때까지 당신이 머문 그 5개월은 한국엔 역사적 전환기였지요. 광복 직후 미 군정 시절 좌우(左右) 대립이 극심했고, 강대국들이 한반도 신탁통치안에 합의한 것도 그때지요. 그 무렵 사진은 한국에도 흔치 않아요.

  당신은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이곳에서 커다란 교실에 머물며 난로 하나로 겨울을 났습니다. 동으로는 속초, 남으로는 부산까지 다니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지요. 미군사령관 존 하지 준장과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함께 있는 공식사진도 있지만 꾀죄죄해도 눈빛만은 초롱초롱한 아이들 사진에 더 눈이 갑니다. 다들 누군가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 있겠네요. 한국 사진은 아니지만 당신의 고향에서 1930년대와 지금의 모습을 같은 앵글로 찍은 사진들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평생 사진을 찍어온 당신을 보며 일상과 역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노력이 없으면 일상은 그저 의미 없이 흘러갈 뿐이지요. 67년 전 사진에 지금 제 가슴이 뛰는 건 당신이 사진을 찍고, 상황을 기록하고, 사진을 보관했다가 스캐닝해서 인터넷에 공개한 덕분이지요.

  인류는 지난해에만 1.8제타바이트의 디지털데이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2시간짜리 고화질(HD) 영화 2000억 편에 해당하는 양이죠. 언론은 물론이고 블로그, 플리커, 페이스북에서 수많은 사가(史家)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얽히고설켜 거대한 역사가 쓰입니다. 앞으로 저도 100년, 200년 뒤 읽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일상을 기록해야 할 것 같아요.

  엊그제 26일에도 플리커에 3장의 사진을 올리셨더군요. 붓으로 그린 듯한 최근 사진들은 저도 잘 못하는 HDR(High Dynamic Range) 기법으로 보정한 것들이네요. 정말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첨단기술도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어요. 아흔 살이 다 된 당신을 보며 하루하루 더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고맙습니다, 돈.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