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스크랩] 홍해리 시인 시집 『독종』(북인, 2012) 출간

洪 海 里 2013. 1. 13. 05:06

 

洪海里 시인의 시집『독종』이 도서출판 북인에서 출간되었다.

 

                              * 홍해리 시집『독종』, 도서출판 북인, 정가 8,000원, 130쪽.

 

 

 

[홍해리 시인]

 

충북 청원에서 출생(1942)하여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1964)하고 1969년 시집『투망도(投網圖)』를 내어 등단했다.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초대 및 2대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한운야학(閑雲野鶴)이 되어 살고 있다.
                    

 

 

[서시]

 

만공滿空

 

눈을 버리면서

나는 세상을 보지 않기로 했다.

 

귀도 주면서

아무것도 듣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내 마음대로 다 버리니

텅 빈 내 마음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내 것이라고,

 

바보처럼

바보처럼 안고 살았다.  

 

 

 

[시 읽기]

 

독종毒種 

 

1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독이다

물고기 가운데 맛이 가장 좋은 놈은

독이 있는 복어다

 

2

가장 무서운 독종은 인간이다

그들의 눈에 들지 마라

아름답다고 그들이 눈독을 들이면 꽃은 시든다

귀여운 새싹이 손을 타면

애잎은 손독이 올라 그냥 말라죽는다

 

그들이 함부로덤부로 뱉어내는 말에도

독침이 있다

침 발린 말에 넘어가지 마라

말이 말벌도 되고 독화살이 되기도 한다

 

3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은 독버섯이고

단풍이 고운 옻나무에도 독이 있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독종이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독종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라는 못된 종자이다.

 

4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산책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층꽃풀탑

 

탑을 쌓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도 간절하면 몸이 흔들려

한 층 한 층 탑사塔寺를 짓는다.

층꽃나무를 보라,

온몸으로 꽃을 피워 올리는 

저 눈물겨운 전신공양.

해마다 쌓고 또 허물면서

제자리에서 천년이 간다.

나비가 날아와 몸으로 한 층 쌓고

벌이 와서 또 한 층 얹는다. 

 

스님은 어디 가셨는지

달빛 선정禪定에 든 적멸의 탑,

말씀도 없고 문자도 없는

무자천서無字天書 경전 한 채.

 

 

 

소금과 시

 

소금밭에 끌려온 바다가

햇볕과 바람으로 제 몸을 다 버리고 나서야

잘 여문 소금이 영롱하게 피어난다

맛의 시종인, 아니 황제인 소금의 몸에서

밀물과 썰물이 놀고 있는 소리 들린다.

 

소금을 기르는 염부의 등을 타고 흘러내린

수천수만 땀방울의 울력으로

바다의 꽃, 물의 사리인

가장 맛있는 바다의 보석이 탄생하듯이,

 

시인은 말의 바다를 가슴에 품고

소금을 빚는 염부,

몇 달 몇 년이 무슨 대수냐면서

한 편의 시는 서서히 소금으로 익어간다.

  

어둔 창고 속에서 간수가 빠져나가야

달고도 짠 소금이 만들어지듯

서둘지 마라,

느긋하게 뜸을 들이며 

가슴속 언어산의 시꽃은 열매를 맺는다.

 

 

 

우화羽化

 

바닥을 본 사람은

그곳이 하늘임을 안다

위를 올려다보고

일어서기 위해 발을 딛는 사람은

하늘이 눈물겨운 벽이라는 것을

마지막 날아오를 허공임을 알고

내던져진 자리에서

젖은 몸으로

바닥을 바닥바닥 긁다 보면

드디어,

바닥은 날개가 되어 하늘을 친다

바닥이 곧 하늘이다.

 

 

 

수련睡蓮 그늘

 

수련이 물 위에 드리우는 그늘이

천 길 물속 섬려한 하늘이라면

칠흑의 아픔까지 금세 환해지겠네

그늘이란 너를 기다리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거문고 소리 아니겠느냐

그 속에 들어와 수련꽃 무릎베개 하고

푸르게 한잠 자고 싶지 않느냐

남실남실 잔물결에 나울거리는

천마天馬의 발자국들

수련잎에 눈물 하나 고여 있거든

그리움의 사리라 어림치거라

물속 암자에서 피워올리는

푸른 독경의 소리 없는 해인海印

무릎 꿇고 엎드려 귀 기울인다 한들

저 하얀 꽃의 속내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시름시름 속울음 시리게 삭아

물에 잠긴 하늘이 마냥 깊구나

물잠자리 한 마리 물탑 쌓고 날아오르거든

네 마음 이랑이랑 빗장 지르고

천마 한 마리 가슴속에 품어 두어라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

 

 

 

그늘과 아래

 

그늘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늘이 그늘그늘 드리워진 곳은 어디인가

그늘은 늘 아래 존재한다

그늘은 미끄러워 잡히지 않는다

그런 걸 알면서도 나는 '그늘 아래'라고 겁없이 쓴다

그늘에 아래가 있는가

그러면 그늘의 위는 어디인가

그래 어쩌자고 나는 그늘 아래로 파고 드는가

그냥 그늘 속으로 기어들지 않는 것인가

그늘은 무두질 잘 해 놓은 투명한 가죽이다

그늘에서 가죽에 막걸리를 먹여야 좋은 소리가 난다

그늘의 소리가 배어 있다 나온다

그늘북은 항상 얻어맞는 잔잔한 슬픔이다

그게 아니다 북은 젖어 있는 팽팽한 희망이다

그래 나는 늘 그늘이고 싶고 아래에 있다.

 

 

 

겨울 놀 지다

 

누가 망치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바닷속으로 하릴없이 박히는

거대한 황금 기둥

거꾸로 보면 거대한 둥근 불꽃을

 누가 바닷속에서 떠받들고 있었다

쩌릿쩌릿 옆구리에 경련이 왔다

황홀이었다

절정이었다

막장은 얼마나 먼가

우주 인력으로

끓어오르는 막무가내의 바다

입술이 푸르게 젖어

밤새도록 깊은 꿈을 꾸고 있었다.

 

 

 

아내새

 

한평생 나는 아내의 새장이었다

아내는 조롱 속에서 평생을 노래했다

아니, 울었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하나 둘 빠져나갔다

삭신은 늘 쑤시고

아파 울음꽃을 피운다

이제 새장도 낡아 삐그덕대는 사립이

그냥, 열린다

아내는 창공으로 날아갈 힘이 부친다

기력이 쇠잔한 새는

조롱조롱 새장 안을 서성일 따름

붉게 지는 노을을 울고 있다

담방담방 물 위를 뛰어가는 돌처럼

온몸으로 물수제비뜨듯

신선한 아침을 노래하던 새는

겨울밤 깊은 잠을 비단실로 깁고 있다

노래도 재우고

울음도 잠재울

서서한 눈발이 한 生을 휘갑치고 있다.

 

 

 

금강초롱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초롱꽃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뒷표지 '시인의 말']

 

왜 시인인가. 시를 쓰는 이는 왜 '詩家'가 아니고 '詩人'인가?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극작가처럼 '家'가 아니고 '人'인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시는 말씀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고 진실된 말씀의 '경전'이고 시인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이 아니라 '시를 낳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시는 어떤 것이고 시인은 누구인가. 시는 시시是是한 것이요, 시인은 그렇다고 시인是認하는 사람이어서 시인은 시로써 인류의 정신을 일깨워 나가는 시인是人이어야 한다. 시는 모든 문학의 꽃, 즉 문학의 정수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나무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동물의 맑고 밝은 눈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바다의 반짝이는 등대이다.

 

시는 쉽고 짧고 재미있어야 한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하듯 시도 맛이 있어야 한다. 향기가 있어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시는 한번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시는 읽고 난 후에 사색에 젖게 하고 가슴을 시원하게 울려주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짜릿하게 파문을 일으키든가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시는 진선미의 맑고 고운 맛과 멋이 배어 있어야 한다.

 

시는 꽃이어야 한다.꽃은 색깔과 향기와 꿀과 꽃가루가 있어 벌 나비가 모여든다. 꽃의 형태는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가. 독자가 없는 시는 조화나 시든 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시는 물이어야 한다.사람들을 촉촉이 적시고 가슴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 줘야 한다.

 

시는 矢〔화살〕이어야 한다.독자의 가슴을 꿰뚫을 수 있는 말씀의 화살, 언어의 금빛 화살이 되어야 한다. 독자들의 가슴에 꽂혀 파르르 떨어야 한다.

 

 

 

 

 

 

 

 

 

 

[시집]

*『투망도投網圖』(선명문화사, 1969)*『화사기花史記』(시문학사, 1975)*『무교동武橋洞』(태광문화사, 1976)*『우리들의 말』(삼보문화사, 1977)*『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민성사, 1980)*『대추꽃 초록빛』(동천사, 1987)*『청별淸別』(동천사, 1989)*『은자의 북』(작가정신, 1992)*『난초밭 일궈 놓고』(동천사,1994)*『투명한 슬픔』(작가정신, 1996)*『애란愛蘭』(우이동사람들, 1998)*『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푸른 느낌표!』(우리글, 2006)*『황금감옥』(우리글, 2008)

*『비밀』(우리글, 2010)

*『독종毒種』(2012, 도서출판 북인)

 

 

[시선집]

*『홍해리 시선洪海里詩選』(탐구신서 275, 탐구당, 1983)* 『비타민 詩』(우리글, 2008)

*『시인이여 詩人이여』(우리글, 2012)

 

 

洪海里 시인의 집 <洗蘭軒> 

http://blog.daum.net/hong1852

hongpoet@hanmail.net

 

 

 

 

 

 

 

 

 

 

 

 

 

 

 

 

 

 

 

출처 : 우리시회(URISI)
글쓴이 : 황연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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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海里 시인 시집『독종』(북인, 2012) 출간 . 정가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