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화사기花史記』1975

첫눈

洪 海 里 2013. 7. 15. 17:10

첫눈

 

洪 海 里

 

 

하늘에서 누가 피리를 부는지

그 소리가락 따라

앞뒷산이 무너지고

푸른빛 하늘까지 흔들면서

처음으로 처녀를 처리하고 있느니

캄캄한 목소리에 눌린 자들아

민주주의 같은 처녀의 하얀 눈물

그 설레는 꽃이파리들이 모여

뼛속까지 하얀 꽃이 피었다

울음소리도 다 잠든

제일 곱고 고운 꽃밭 한가운데

텅 비어 있는 자리의 사내들아

가슴속 헐고 병든 마음 다 버리고

눈뜨고 눈먼 자들아

눈썹 위에 풀풀풀 내리는 꽃비 속에

젖빛 하늘 한 자락을 차게 안아라

빈 가슴을 스쳐 지나는 맑은 바람결

살아생전의 모든 죄란 죄

다 모두어 날려 보내고

머릿결 곱게 날리면서

처음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불러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홀로 혼자서 빛나는 너

온 세상을 무너뜨려서

거대한 빛

그 무지無地한 손으로

언뜻

우리를 하늘 위에 와 있게 하느니.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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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첫 눈
임상진/조회:3164/일자:2000.12.14

 


어제 서울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 눈.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은 순결과 무구(無垢)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첫 눈 내릴때 만자자'는 연인들의 약속도 모두 그 상징적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직도 그런 낭만이 남아 있다는게 자못 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첫 눈과 관련해 이런 싯귀가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울음소리도 다 잠든
제일 곱고 고운 꽃밭 한가운데
텅 비어 비어 있는 자리의 사내들아
눈썹 위에 풀풀풀 내리는 꽃비 속에
잿빛 하늘 한자락을 차게 안아라

(홍해리의 '첫눈' 중에서)



[금일 중앙일보의 분수대 칼럼에 실린 글이 마음에 들어 옮겨적었습니다.]


첫눈이 오고나니 금년도 다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구에게도 그렇지만 금년 한 해는 저에게는 뜻 깊은 한 해였고 많은 분들의 성원아래 저의 목표에 근접하는 수준높은 시력교정수술 전문병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매일같이 관심과 성원을 아끼지 않아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잘 보이는 '눈'과 '첫 눈' 그리고 또 하나의 화두인 '마음의 눈'을 우리 모두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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