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 치매행致梅行 · 14
洪 海 里
눈을 감아야 보입니다.
눈을 뜨면
보이지 않습니다.
한평생 살았다고 보이겠습니까?
눈 감아야, 비로소
아내가 보입니다.
아내가 이상하다
- 치매행致梅行 · 18
洪 海 里
곱게 나이 들던 아내가 이상합니다
하찮은 일 중요한 일에 연연 마라는 듯
큰 것 작은 것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적은 것 많은 것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초탈한 듯 덤덤합니다
세월도 비껴가지 못하는 무심한 언덕에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지 마라는 듯
창밖을 내다봅니다
걸어가는 이들
뛰어가는 사람들
병원 창문으로 보면 위대해 보입니다
아파야 사는 일도 맛이 더 합니다
오늘은 사랑의 편지를 보내도 받지 않는
아내의 이메일 주소를 지워버렸습니다
아, 내가 이상하다.
아내는 부자
-치매행致梅行 · 78
洪 海 里
나는 평생 비운다면서도
비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도
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내려놓자 하면서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버린다 비운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려놓는다는 말도 없이
아내는 다 버리고 비웠습니다
다 내려놓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합니다
천하태평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이 없습니다
집 걱정 자식 걱정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아내는
천하제일의 부자입니다.
아내새
- 치매행致梅行 · 89
洪 海 里
한평생 나는 아내의 새장이었다
아내는 조롱 속에서 평생을 노래했다
아니, 울었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하나 둘 빠져나갔다
삭신은 늘 쑤시고
아파 울음꽃을 피운다
이제 새장도 낡아 삐그덕대는 사립이
그냥, 열린다
아내는 창공으로 날아갈 힘이 부친다
기력이 쇠잔한 새는
조롱조롱 새장 안을 서성일 따름
붉게 지는 노을을 울고 있다
담방담방 물 위를 뛰어가는 돌처럼
온몸으로 물수제비뜨듯
신선한 아침을 노래하던 새는
겨울밤 깊은 잠을 비단실로 깁고 있다
노래도 재우고
울음도 잠재울
서서한 눈발이 한 생生을 휘갑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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