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시> 아내

洪 海 里 2014. 12. 21. 15:33

 

 

 

아내

- 치매행致梅行 · 14

 

 

洪 海 里

 

 

눈을 감아야 보입니다.

 

 

눈을 뜨면

보이지 않습니다.

 

 

한평생 살았다고 보이겠습니까?

 

 

눈 감아야, 비로소

아내가 보입니다.

 

 

 

아내가 이상하다

- 치매행致梅行 · 18

 

洪 海 里

 

 

곱게 나이 들던 아내가 이상합니다

하찮은 일 중요한 일에 연연 마라는 듯

큰 것 작은 것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적은 것 많은 것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초탈한 듯 덤덤합니다

세월도 비껴가지 못하는 무심한 언덕에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지 마라는 듯

창밖을 내다봅니다

걸어가는 이들

뛰어가는 사람들

병원 창문으로 보면 위대해 보입니다

아파야 사는 일도 맛이 더 합니다

오늘은 사랑의 편지를 보내도 받지 않는

아내의 이메일 주소를 지워버렸습니다

아, 내가 이상하다.

 

 

아내는 부자

-치매행致梅行 · 78

 

洪 海 里

 

 

나는 평생 비운다면서도

비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도

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내려놓자 하면서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버린다 비운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려놓는다는 말도 없이

아내는 다 버리고 비웠습니다

다 내려놓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합니다

천하태평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이 없습니다

집 걱정 자식 걱정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아내는

천하제일의 부자입니다.

 

 

아내새

- 치매행致梅行 · 89

 

洪 海 里

 

 

한평생 나는 아내의 새장이었다

아내는 조롱 속에서 평생을 노래했다

아니, 울었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하나 둘 빠져나갔다

삭신은 늘 쑤시고

아파 울음꽃을 피운다

이제 새장도 낡아 삐그덕대는 사립이

그냥, 열린다

아내는 창공으로 날아갈 힘이 부친다

기력이 쇠잔한 새는

조롱조롱 새장 안을 서성일 따름

붉게 지는 노을을 울고 있다

담방담방 물 위를 뛰어가는 돌처럼

온몸으로 물수제비뜨듯

신선한 아침을 노래하던 새는

겨울밤 깊은 잠을 비단실로 깁고 있다

노래도 재우고

울음도 잠재울

서서한 눈발이 한 생을 휘갑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