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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시인 ‘손톱깎기-치매행·5’ / 서울문화투데이 2016. 3. 18.

洪 海 里 2016. 3. 19. 15:40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詩]

 

홍해리 시인 ‘손톱깎기-치매행·5’

 
2016년 03월 18일 (금) 22:03:48 공광규 시인 sctoday@hanmail.net
 

‘손톱깎기-치매행·5’

 

홍해리 시인

 

 

맑고 조용한 겨울 날 오후
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
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
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
가녀린 손가락마다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
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
함께 산 지 마흔다섯 해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줍니다
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
씀벅씀벅,
눈시울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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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는 저녁때 문을 나서서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선다. 눈이 내려서 하얗게 길을 지우는데도 지팡이도 없이 밖으로 나간다. “닫고 걸어 잠그던 문 다 열어놓고/ 매듭과 고삐도 다 풀어버리고/ 바람처럼 강물처럼 구름처럼” 돌아다닌다. 치매에 걸린 것이다.

홍해리 시인의 시집 ‘치매행 致梅行’은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을 아타깝고 애절한 심정으로 표현한 울음의 시집이다. 시인은 “치매癡?를 치매致梅라고 하는 게 마땅하다”고 한다. 동음이의어다. 말은 같으나 뜻은 다르게 하는 수사법 가운데 하나다. 유효한 시 창작법 가운데 하나다.

시인은 치매를 질병이 아니라 초월의 세계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더럽혀진 머리를 깨끗하게 빤 상태인 것이다.

150편에 달하는 시 모두가 치매에 걸린 아내를 관찰하여 표현하였다. 행간 곳곳마다 안타까운 연민과 울음이 가득하다. 시인은 자신의 반성과 고백이라서 잘 쓰려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래 시와 같이 무기교를 통해 진실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공광규 시인 /986년 등단. 시집 <담장을 허물다> 등 다수 시집 출간. 2009년 윤동주문학상, 2011년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등.

화자는 치매에 걸린 아내와 같이 지내는 남편입니다. 손톱을 깎고 있는 남편에게 치매 걸린 아내가 다가갑니다. 그리고 손을 내밉니다.

손을 내민 아내가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손톱만 잘라냈지 아내의 손톱에는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습니다.

아내의 가녀린 손가락 마디를 보니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결혼한 지 마흔다섯 해인데 처음으로 아내의 손톱을 잘라주는 것입니다. 천진한 슬픔이 가득한 시입니다.


- 공광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