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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시인 '치매행' 머니투데이|공광규 시인 / 2016. 3. 19.

洪 海 里 2016. 3. 19. 15:26

[시인의 집]

 

치매 걸린 아내에게 바치는 애틋한 사랑 노래 <41> 

 

홍해리 시인 '치매행' 머니투데이|공광규 시인
입력 16.03.19. 03:10 (수정 16.03.19. 03:10)

 

 

 

[머니투데이 공광규 시인]

 [편집자주] '시인의 집'은 시인이 동료 시인의 시와 시집을 소개하는 코너다. 시인의 집에 머무는 시인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가깝게 두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시와 시집을 소개한다. 여행갈 때,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시 한 편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 시 한 수를 외우고 읊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갖는 것 또한 시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41> 홍해리 시인 ‘치매행’

 

 

 

  시인의 아내는 저녁때 문을 나서서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선다. 눈이 내려서 하얗게 길을 지우는데도 지팡이도 없이 밖으로 나간다. “닫고 걸어 잠그던 문 다 열어놓고/ 매듭과 고삐도 다 풀어버리고/ 바람처럼 강물처럼 구름처럼” 돌아다닌다. 치매에 걸린 것이다.

  홍해리 시인의 시집 ‘치매행 致梅行’은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을 아타깝고 애절한 심정으로 표현한 울음의 시집이다. 시인은 “치매癡?를 치매致梅라고 하는 게 마땅하다”고 한다. 동음이의어다. 말은 같으나 뜻은 다르게 하는 수사법 가운데 하나다. 유효한 시 창작법 가운데 하나다.

  시인은 치매를 질병이 아니라 초월의 세계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더럽혀진 머리를 깨끗하게 빤 상태인 것이다.

  150편에 달하는 시 모두가 치매에 걸린 아내를 관찰하여 표현하였다. 행간 곳곳마다 안타까운 연민과 울음이 가득하다. 시인은 자신의 반성과 고백이라서 잘 쓰려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래 시와 같이 무기교를 통해 진실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맑고 조용한 겨울 날 오후
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
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
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
가녀린 손가락마다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
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
함께 산 지 마흔다섯 해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줍니다
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
씀벅씀벅,
눈시울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 ‘손톱깎기-치매행·5’ 전문

 

  손톱을 깎고 있는 남편에게 치매 걸린 아내가 다가간다. 그리고 손을 내민다. 손을 내민 아내가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남편은 자신의 손톱만 잘라냈지 아내의 손톱에는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아내의 가녀린 손가락 마디를 보니 손톱이 제법 자랐다. 결혼한 지 마흔다섯 해인데 처음으로 아내의 손톱을 잘라주는 것이다.

  ‘행복-치매행’에서는 남편의 품을 파고들어 팔베개를 하고 자는 아내의 애틋함이 눈물겹다. 아내는 “아기가 엄마 품에 파고들 듯이” 남편 옆으로 들어와서 팔베개를 한다. 남편이 “그냥 가만히 안고 있으면/ 따뜻한 슬픔의 어깨가 들썩이다 고요해”진다. 아내가 잠든 것이다. 이런 아내의 모습은 마른 빨래와 같다.

  시인은 이런 슬픔이 묻어나는 시들을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들에게 바치고 있다. 실제로 전국에 있는 치매환자요양소에 시집을 나누어주려고 주소를 파악하였다고 한다. 시인은 이 시집을 내면서 하루 속히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되어 치매로 신음하고 있는 환자들과 환자를 돌보느라 애쓰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치매에 이른 배우자가 있는 분에게, 늙어가는 부모가 있는 분에게, 애절한 아내 사랑의 사연이 담긴 시집 ‘치매행’을 선물해 보자.

◇치매행=홍해리 지음/황금마루/197쪽/15,000원

공광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