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검은등뻐꾸기 / 홍해리 : 강용환

洪 海 里 2016. 5. 26. 15:35

검은등뻐꾸기

 

 홍 해 리

 

 

 

뻐꾸기가 몰래 탁란托卵을 한 새끼
오목눈이 새끼들이 줄탁啐啄도 하기 전
둥지 밖으로 다 밀어내 버리고
오목눈이 둥지보다 더 크게 자란 새끼
둥지 위에 턱 올라 앉아
큰 입을 딱딱 벌리고 있다
까만 부리 빨간 입 속으로 먹이가 계속 들어간다
먹이 물어 나르기에 힘이 부친 오목눈이 어깨 위로
긴긴 해가 저물고 있다
'이소離巢하라, 이소하라!'
어미는 계속 주변을 맴돌며 뻐꾹거리고
부잣집의 잘난 자식들이
늙은 부모 동남아 관광시켜 드린다고
현지에 가 버리고 온다는데
그렇지 때가 되면 빨리 이소해야지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사랑도 번뇌도 미련도 다 버리라고
먼 먼 동남쪽 하늘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는 검은등뻐꾸기
'홀딱 벗고 색즉시공色卽是空,
홀딱 벗고 공즉시색空卽是色'
하루 종일 주문을 외는 소리에
쯧쯧 혀를 차는 뻐꾹채만 눈시울이 붉다.

 

시집비밀(우리글, 2010)

 

 

* 홍해리 시인의 검은등뻐꾸기’ 시 읽기召君 강용환

 

뻐꾸기가 오목눈이 몰래 오목눈이의 둥지에 탁란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새끼를 키울 능력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오목눈이 알이나 부화한 새끼들이 뻐꾸기 새끼에게 몰살당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누군가 내 숨통을 조여 오는 것같이 숨이 턱 막혀 버렸다아니 어이없는 행위에 온몸이 굳어버려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해야 어울릴 것이다오목눈이의 은혜는 둘째 치고라도 검은등뻐꾸기가 무슨 천성이 그리 악하여 오목눈이 새끼들을 둥지에서 밀어낸다는 말인가?

오목눈이는 전생에 무슨 업이 있기에 저리 새끼들이 잔인한 살육을 당한단 말인가?

뻐꾸기에게는 무슨 한이 저리 많아 오목눈이 새끼에게 저리 잔인한 악행을 저지른단 말인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에 문득어쩌면 뻐꾸기는 전생에 오목눈이에게 받은 원한 때문이 아니라 뻐꾸기의 천성적인 악함 때문에 탁란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뻐꾸기 어미가 둥지를 틀어 알을 부화했다면 천성이 악한 뻐꾸기 새끼들은 서로 종족을 죽이는 행위를 망설일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하여 뻐꾸기 어미 처지에서 보면 둥지를 버려야 새끼들이 서로 생존할 수 있기에 오목눈이를 이용한 탁란으로 최악의 사태를 벗어보자는 방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인은 약육강식의 처절한 모습을 더는 지켜보기 어려워 이소하라이소하라소리치고는 화재를 돌려 인간들의 삶을 검은등뻐꾸기와 비교하여 말한다.

 

부잣집의 잘난 자식들이

늙은 부모 동남아 관광시켜 드린다고

현지에 가 버리고 온다는데

그렇지 때가 되면 빨리 이소해야지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사랑도 번뇌도 미련도 다 버리라고

 

시인은 뻐꾸기와 오목눈이의 모진 삶을 보며 인간의 삶이 뻐꾸기와 오목눈이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여기서 시인의 이소하라는 외침은 부모 자식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항상 느끼듯이 국정을 살펴야 하는 정치인들이 국정은 뒤로 한 체 당리당략에 매달려 서로 헐뜯는 일부 정치인들을 보면 뻐꾸기 모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또한사후를 위해 올바른 소통을 주어야 할 종교 사제들이 祖師조사의 올바른 깨달음을 살피지 않고 이익에 편중한 가르침으로 악행을 일삼는다면 그 또한 검은등뻐꾸기 처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시인은 검은등뻐꾸기 새끼의 행위를 어쩔 수 없는 업보로 대변하듯 말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는 검은등뻐꾸기

'홀딱 벗고 색즉시공色卽是空,

홀딱 벗고 공즉시색空卽是色'

하루 종일 주문을 외는 소리에

쯧쯧 혀를 차는 뻐꾹채만 눈시울이 붉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색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은 모든 생명이 거부할 수 없는 영혼을 육신의 족쇄로 채워놓은 신의 천명이다따라서 검은등뻐꾸기는 혈육 상잔의 비극을 피하고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라 비춰 볼 수도 있다.

하여 시인은 한탄한다어찌하여 약육강식에 업을 주어 이토록 잔인한 악행을 일으키는 것이냐며 뻐꾹채만 눈시울이 붉다고 말하는 것이다.

검은등뻐꾸기의 운명을 인간의 삶에 비춰 보면인간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약육강식의 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신께서 욕심이 얼마만큼 잔인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고자 천국에서 죄를 지은 죄인에게 약육강식의 업을 준 까닭이라면 뻐꾸기의 악행은 공한 것이다물론오목눈이 새끼도 전생에 지은 죄를 죽음으로 업을 받았다면 공한 것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식물이나 동물을 잡아먹는 인간의 행위도 죄악이라 할 수 없으니 뻐꾹채만 눈시울이 붉은 것이 아니라 사람채도 눈시울이 붉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약육강식의 업을 떠나 욕심에 매달린 인간들의 잔혹한 행위를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 과연 있을까?

시인은 왜뻐꾹채만 눈시울이 붉다고 말하곤 하고 싶은 말문을 닫아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