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의 봄꽃 시편 / 꽃시집『금강초롱』(우리詩 시인선 030, 2013)

洪 海 里 2017. 2. 16. 07:53


洪海里의 봄꽃 시편 / 꽃시집『금강초롱』(우리詩 시인선 030, 2013)에서



동백 등불

 

먼저 간 이들

길 밝혀 주려

동백은 나뭇가지 끝끝

왁자지껄, 한 생을 밝혀

적막 허공을 감싸 안는다.

한 생이 금방이라고

여행이란 이런 것이라고.

지상의 시린 영혼들

등 다숩게 덥혀 주려고

동백꽃

아단법석, 땅에 내려

다시 한 번 등을 밝힌다.

사랑이란 이런 거라고

세월은 이렇게 흘러간다고.

 

 

유채꽃

 

내가 쓰는 글마다

하나같이 노란 연서 같다

성산일출 바다가 풀어놓는 물감보다

시적인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온통 노랗다

어쩌자고

제주 현무암처럼

내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가

봄이 오면.

 

 

매화꽃 피고 지고            

        

심학규가 왕비인 딸 청이 앞에서

눈을 끔쩍끔쩍하다 번쩍 세상을 보듯

매화나무가 겨우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아니라

천 등 만 등이 하나 둘 켜지면서

가지마다 암향暗香이 맑고 푸르다

다글다글 꽃봉오리가 내뿜는 기운으로

어질어질 어질머리가 났다

계집이 죽었는지

자식이 죽었는지

뒷산에서 구성지게 울어 쌓는 멧비둘기

봄날이 나울나울 기울고 있다

시인은 매화꽃이 두근두근댄다고 했다

꽃 터지는 소리가 그만 절창이라고 했다

한 사내를 사랑한 여인의 가슴이

삼복三伏 염천炎天이어서

두향杜香이는 죽어서도 천년을

매화꽃 싸늘하게 피우고 있다.

   

 

할미꽃

 

생전에 고개 한 번 들지 못한

삶이었으니

죽어서도 여전하구나

있을 때 잘해! 라고 말들 하지

지금 여기가 극락인 줄 모르고

떨며 사는 삶이 얼마나 추우랴

천둥으로 울던 아픈 삶이었기

시린 넋으로 서서

절망을 피워 올려 보지만

자줏빛 한숨소리 우레처럼 우는

산자락 무덤 위

할미꽃은 고갤 들지 못한다

이 에미도 이제

산발한 머리 하늘에 풀고 서서

훨훨 날아가리라, 할미꽃.

     

 

서향瑞香

    - 화적花賊

 

꽃 중에서도 특히 이쁜 놈이 향기 또한 강해서

 

다른 놈들은 그 앞에서 입도 뻥끗 못하듯,

 

계집 가운데도 특히나 이쁜 것들이 있어서

 

사내들도 꼼짝 못하고 나라까지 기우뚱하네.

     

 

아름다운 남루

    - 산수유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멘트 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 있다

 

이 막막한 봄날

누덕누덕 기운 남루가 아름답다.

   

 

 

개나리꽃

 

그대는

땅 속의 사금가루를 다 모아

겨우 내내

달이고 달이더니,

 

드디어

24금이 되는 어느 날

모두 눈감은 순간

천지에 축포를 터뜨리었다.

 

지상은 온통 금빛 날개

종소리 소리

순도 100%의 황홀

이 찬란한 이명이여.

 

눈으로 들어와

귀를 얼리는

이 봄날의 모순을

누구도 누구도 어쩌지 못하네.

     

 

조팝나무꽃

 

숱한 자식들

먹여 살리려

죽어라 일만 하다

가신

어머니,

 

다 큰 자식들

아직도

못 미더워

이밥 가득 광주리 이고

서 계신 밭머리,

 

산비둘기 먼 산에서 운다.

 

 

                  *홍해리 꽃시집『금강초롱』(우리시인선 030, 2013)에서

 


*http://blog.dau.net/jib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