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나무에 풍경 달다
거저 듣는 새소리 고마워
매화 가지에 방울을 걸어 주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바람이 그윽한 화엄의 경을 펼친다
매화의 분홍빛 눈은 이미 감겨지고
연둣빛 귀를 파릇파릇 열고 있다
매화에 없는 악보를 풍경치듯
하나 하나 옮겨놓고 있는
붕어가 콕콕 쪼고 톡톡 치며
하늘의 노래를 시나브로 풀어 놓고 있다
바람이 물고기를 타고 춤을 추는
매화 사타구니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가지마다 많은 열매가 열리겠다
올해는 매실이 더욱 튼실하겠다
♧ 복사꽃 그늘에서
돌아서서
새실새실 웃기만 하던 계집애
여린 봄날을 후리러
언제 집을 뛰쳐나왔는지
바람도 그물에 와 걸리고 마는 대낮
연분홍 맨몸으로 팔락이고 있네.
신산한 적막강산
어지러운 꿈자리 노곤히 잠드는
꿈속에 길이 있다고
심란한 사내 달려가는 허공으로
언뜻 봄날은 지고
고 계집애 잠들었네.
♧ 박태기꽃 터지다
누가 태기라도 쳤는가
가지마다
펑펑펑
박 터지는 소리
와글와글
바글바글
우르르우르르 모여드는
시뻘건 눈들
조팝나무도 하얀 수수꽃다리도
휘청거리는 봄날
“뻥이야!”
“펑!”
먼 산에 이는 이내.
♧ 산수유 그 여자
눈부신 금빛으로 피어나는
누이야,
네가 그리워 봄은 왔다
저 하늘로부터
이 땅에까지
푸르름이 짙어 어질머리 나고
대지가 시들시들 시들마를 때
너의 사랑은 빨갛게 익어
조롱조롱 매달렸나니
흰 눈이 온통 여백으로 빛나는
한겨울, 너는
늙으신 어머니의 마른 젖꼭지
아아, 머지않아 봄은 또 오것다.
♧ 명자꽃
꿈은 별이 된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별과 별 사이 꿈꾸는 길
오늘 밤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뜬들 또 뭘 하겠는가
사랑이란
지상에 별 하나 다는 일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늘 해가 뜨고 달이 뜨던
환한 얼굴의
명자 고년 말은 했지만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었지
밤이 오지 않는데 별이 뜰 것인가
잠이 오지 않는데 꿈이 올 것인가
♧ 호호好好
도화 도화, 좋아, 좋아!
저 연분홍 누각 속에는
벌써,
물큰한 엉덩이 눈이 반쯤 감겼다
가슴츠레하다
이 환한 봄날 대낮
무작정 낙하하는 첫날밤 신부의 속옷
낙화, 낙화,
나무 아랜 사내들이 술잔 위로 눈이 풀리고
잔과 잔 사이 사뿐사뿐 내려앉는
속수무책의 저 입술들
드디어 잔 속으로 정확히 안기는 여자
무색의 액체가 금방 분홍으로 빛난다
나를 마셔 보라고
진한 지분 냄새로 금방 해는 기울고
산 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벌 떼처럼 밀려오는 욕정이
잉잉거리며 지분지분―.
♧ 연연然然
봄이 왔다고
발기하는 물의 뼈
하늘과 땅으로
짤똑짤똑 오는 찔레꽃 향기
바싹바싹 마르는 입안
환하게 타는 입술
바람 탓, 바람 탓이라고
잠깬 봄비의 욕망덩어리
어둡고 추운 기억을 안고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
망각으로 가는 세월
배시시 웃는 연둣빛 새순
천사와 악마의
봄날 궁전.
♧ 참꽃여자 · 6
산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파르르파르르, 떠는
불같은 사랑
물 같은 사람
그리움은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
수줍고 수줍어라, 그 女子.
꽃잎과 어루는 햇살도
연분홍 물이 들어 묻노니
네게도 머물고픈 물빛 시절이 있었더냐
울지 말아라, 울지 말아라
파란 혓바닥 쏘옥 내밀고 있는
가녀리고 쓰라린, 그 女子.
*홍해리 시집 ‘황금감옥’(우리글대표시선 10, 20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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